동방번개 전능신교 정체와 대응 전략세미나 개최 

기사출처 : 크리스천투데이
http://www.christiantoday.co.kr/news/315928#_enliple

중국에서 유입된 사교(邪敎: 흔히 사회의 도덕이나 제도에 나쁜 영향을 끼치는 건전하지 못한 종교)인 전능신교(전능하신하나님교회, 동방번개)의 실체 해부 및 대응을 위해 국제종교문제대책전략연구소(소장 심우영 목사)가 11일 오후 2시 서울 롯데시티호텔 구로점에서 ‘동방번개(전능신교) 정체와 대응 전략 세미나’를 개최했다.

전능신교는 지방교회와 연관성이 없어

15년간 전능신교를 연구해온 美 아시아 리서치 연구 센터 하지진 원장은 “전능신교의 전체 교세는 파악되지 않고 있지만, 하남성 이단대책협회에 따르면 하남성에만 전능신교 신도 수가 80만명에 달하고 있다. 중국 가정교회를 넘어 한국과 미국에도 파고들고 있는 실정”이라며 전능신교의 배경과 교리의 위해성, 대처법 등을 언급했다.

특히 하 원장은 그간 한국교회에서 발간된 전능신교 자료의 오류를 언급하며 “한국교회에서 발간한 자료들 중 전능신교의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이란 책자를 무작위로 인용해 일부 인물과 교회가 관련성이 있는 것처럼 내포했지만 사실은 무관한 것들이 대부분”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인용된 관계자들과 교회들이 큰 피해를 입고 있는 실정”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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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arryk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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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교회(local Church)의 질문과 답변 시리즈 1회 -
목사제도가 왜 지방교회에는 없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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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arryk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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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교회] 어떻게 이단을 분별하는가?(2)





6. 기적과 신유의 일에 관하여 


이단의 여섯 번째 항목은 기적과 신유에 관한 것이다. 성경에서 기적과 신유는 대부분 병의 치료를 위한 것이다. 이것들은 바로 하나님의 표적들이다. 어떤 이단들은 많은 이적과 기사들로 사람들을 매혹시킨다. 주님은 그분이 다시 오실 날이 이르기 전에 많은 기적들이 사람들을 미혹할 것이라고 예언하셨다(마24:24). 어떤 이단들은 병을 고침으로 사람을 유혹한다. 그러나 그들은 결국 그리스도를 믿지 않게 만든다. 성경에서 참된 기적과 초자연적인 일들은 반드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주님을 영접하는 것이어야 한다. 누가 17장 17절은 '그러자 예수님께 말씀하셨다. "열 사람이 깨끗하게 되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아홉은 어디 있습니까?라고 하셨다. 즉 한 사람만 구원받고 아홉 명은 병을 고쳤지만 예수님을 믿지 않았다. 우리는 병 고침과 기사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구원받는 것이 중요함을 알아야 한다. 어떤 병은 자연적인 법칙을 어겼기 때문에 생긴 것이고, 어떤 병은 사단의 공격으로 인한 것이며, 어떤 병은 죄로 인한 것이다. 성령의 역사로 인한 병 고침과 기적은 그리스도를 주로 시인하고 믿도록 하는데 목적이 있다. 우리는 그리스도와 관계없이 발생하는 기괴한 일들에 대해서 분별의 영을 가져야 한다. 악한 자의 역사는 오히려 사람들을 미혹하여 그리스도를 믿지 못하도록 하는 것이다. 


 

7. 예언에 관하여


 이단의 일곱째 항목은 예언에 대한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주님의 다시 오심을 믿는다. 그분이 다시 오시는 날짜에 대하여, 주님은 아무도 알지 못하며 천사도 아들도 알지 못한다고 하셨다. 이것이 주님의 다시 오시는 날짜에 관한 기본 원칙이다. 어떤 사람은 1874년에 주님이 이미 왔다고 믿는데, 여호와의 증인들이 믿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그것은 여호와의 증인의 창시자인 러셀(Russell)이 전한 것이며, 또한 그의 후계자인 요셉 루더포드(Joseph Rutherford)가 전한 교리이다. 그들은 지금이 이미 천년왕국이며, 그렇기 때문에 타자기, 전화, 기차 등이 발명된 것이라고 말한다. 다니엘서의 칠십 이레를 연(年)으로 계산하는 것 외에, 다른 모든 경우는 하루는 바로 하루이다. 만일 어떤 사람이 하루를 일 년으로 계산한다면, 천년왕국은 삼십육만 년이나 된다. 이 일에 대해 변론하는 것은 사람을 번거롭게 하는 일밖에 안 되므로 우리는 들을 필요가 없다. 누구든지 하루를 연(年)으로 계산하여 그리스도의 다시 오실 날을 계산하는 것은 다 이단이다. 


 

8. 산 사람과 죽은 사람의 왕래에 대하여


이단의 여덟 번째 항목은 산 사람과 죽은 사람의 왕래에 대한 것이다. 신명기 18장 9절~13절과 레위기 20장 6절에 따르면 하나님은 절대적으로 산 사람과 죽은 사람의 왕래를 금지하고 계신다. 누가복음에서 주님은, 부자가 음부에서 나사로를 살아 있는 사람의 땅으로 보내어 주기를 간구했지만 허락지 않으셨다. 죽은 사람은 음부에서 혹은 낙원에서 산 사람이 있는 곳으로 돌아올 수 없다. 죽은 사람을 산 사람이 있는 땅으로 돌아오게 하거나 혹 산 사람을 죽은 사람과 왕래하게 하는 것은 바로 귀신과 왕래하는 일이며 성경은 이를 절대적으로 금지하고 있다. 무당은 바로 귀신과 왕래하는 여인이다. 이러한 여인은 오직 한 귀신과만 서로 왕래할 수 있다. 그러한 여인은 사악한 영과 친숙한 여인이다. 그러므로 무당이 귀신과 왕래하는 것은 바로 하나의 귀신이 많은 사람의 영혼으로 가장하는 것이다. 귀신과 왕래하는 무당은 사람의 영혼을 불러오는 것이 아니라 사실은 귀신을 불러오는 것이다. 성경에서 오직 사무엘상 28장에서만 영혼이 음부에서 올라오는 것을 기록하고 있다. 사무엘이 죽은 후에 그 영혼이 불려 올려 졌으며, 올려진 사무엘은 사울을 책망하였다(삼상28:15-19). 성경의 다른 곳에서는 사울이 왜 죽임을 당했는지를 기록하고 있지 않으나, 오직 역대상 10장 13,14절에서만 사울이 귀신과 왕래하였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그로 죽게 하셨다고 말한다. 모세의 율법도 여인이 귀신과 왕래하는 것을 금하고 있다. 여인이 귀신과 왕래할 때 돌로 쳐서 죽이라고 말한다. 그러므로 만일 어떤 사람이 귀신과 왕래한다면, 그것이 이단이다. 


 

9. 여자가 가르치는 것에 관하여


 이단의 아홉 번째 항목은 여자가 가르치는 것에 대한 것이다. 디모데전서 2장, 고린도전서 14장, 계시록 2장은 모두 하나님께서 여자가 가르치는 것을 허락지 않으심을 언급하고 있다. 어떤 교파든 여자가 머리가 되거나, 여자를 우두머리로 하거나, 여자의 지위를 남자와 동등하게 두는 것을 크게 의문시하고 있다. 세상에 있는 주된 이단들 중에서 절반 이상이 여자가 그 발기인이다. 예를 들어 크리스천 과학회의 에디 여사, 안식교의 화이트 여사(Mrs White) 등이 있다. 성경은 로마 천주교에 대해 말하면서 여자 이세벨의 가르침에서 나온 것이라고 말한다(계2:20). 

 


10. 주님의 다시 오심에 관하여


이단의 열 번째 항목은 주님의 다시 오심에 대한 것이다. 이단의 원칙은 바로 주님이 어떤 일을 하시면 사단도 그렇게 한다는 데 있다. 예를 들어 주님이 병을 고치시면 사단도 병을 고친다. 주님의 다시 오심에 관해서 이단 역시 사람을 혼란스럽게 한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이 어느 날 어떤 장소에 주님께서 다시 오실 것이라고 했는데, 결과는 그렇게 되지 않았다. 이것은 사람으로 하여금 성경 안에 있는 주님의 다시 오심의 일에 관하여 관심하지 않게 하거나, 혹은 이 일을 경홀히 여기게 만든다. 사단은 바로 하나의 불명예스러운 일을 가지고 들어와서 주님의 다시 오심의 진리를 손상시키는 것이다. 주님은 확실히 속히 오실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더욱 예언을 주의해야 한다. 그러므로 오늘 이후로도 여전히 예언에 있어서 많은 이단의 형태들이 생겨날 것이다. 만일 어떤 교파든지 어느 날 어떤 장소에 가서 주님의 다시 오심을 기다려야 한다고 예언한다면, 그것은 이단이다. 만일 어떤 사람이 그가 두 증인중 하나라고 말하거나 나팔을 부는 세 천사중 하나라고 말한다면, 당신은 믿지 말아야 한다. 어떤 사람이든지 그가 성경에서 말한 어떤 사람이라고 한다면, 당신은 믿지 말아야 한다. 주님은 사람들이 「그리스도께서 여기… 저기 계십니다.」라고 말할 것이라고 하셨다(마24:23). 당신은 그러한 말을 하는 사람들의 말을 믿지 말라. 이것이 바로 허황된 이단이다. 


우리는 계시록 3장의 빌라델비아교회가 되는 것 외에 다른 것은 믿지 말아야 한다. 사람들이 그가 계시록 혹은 다니엘서 가운데 나오는 어떤 사람이라고 말한다면, 그것은 이단이다. 마지막 날에는 이단이 증가할 것이므로, 우리는 반드시 대조해 보아야 한다. 여러분은 이상한 것을 좋아하지 말아야 하며, 혹은 한번 시험해 보려고 하지 말아야 한다. 이런 호기심은 결국 영성을 손상시키고, 한번 시험해 보려고 하는 것은, 마치 독약을 한번 먹어 보려고 하는 것과 같다.  


(출처: 워치만 니 전집(3) 제 14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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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교회] 어떻게 이단을 분별하는가?(1)




 


마태복음 24:23 그때에 어떤 사람이 여러분에게 '보십시오, 그리스도께서 여기 계십니다!' 혹은 '저기 계십니다!'라고 하여도, 믿지 마십시오.


마태복음 24:24 왜냐하면 거짓 그리스도들과 거짓 신언자들이 일어나 큰 표적들과 기이한 일들을 보이어, 할 수만 있으면 선택된 사람들까지도 미혹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고린도후서 11:13~15  "그런 사람들은 거짓 사도들이며, 속이는 일꾼들이어서 자기를 그리스도의 사도들로 가장하는 이들입니다. 이것은 놀랄 일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사탄도 자기를 빛의 천사로 가장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사탄의 사역자들이 자기들을 의의 사역자들로 가장한다 하더라도, 그것은 대단한 일이 아닙니다. 그들의 최후는 그들의 행위대로 될 것입니다."

 


베드로후서 2:1 "그러나 전에 백성 가운데 거짓 선지자들이 일어났던 것처럼, 여러분 가운데에도 거짓 교사들이 있을 것입니다. 그들은 사람들을 파멸시킬 이단들을 몰래 끌어들이고, 더욱이 자기들을 값 주고 사신 주인을 부인하여, 임박한 멸망을 스스로 불러들일 것입니다."

 

 

서 언



주 예수님은 마태 24장 23절에서 말세에 많은 거짓 그리스도가 일어날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이러한 거짓 그리스도는 세상의 마지막 때에 선택된 사람들조차도 미혹할 것이라고 하셨다. 우리는 오직 참된 빌라델피아 교회의 길을 가야 한다. 우리의 눈이 열려서 이단들을 구별하고 교회의 길을 가야 한다. 

 

우리는 이단에 대한 호기심을 버려야 한다. 누가 독인지 아닌지 확인하기 위해서 독을 마셔보겠는가? 그것은 어리석은 짓이다. 하나님의 자녀들은 어떤 이단에 들어갔다가 그것이 이단임을 확정하고 정죄한 다음 나와서 다시 다른 이단에 들어가고, 그것이 이단임을 확정하고 정죄한 다음 나와서 또 다시 다른 이단에 들어가고 할 필요가 없다. 우리는 일단 이상한 교리를 들어도 그것을 만지지 말아야 한다. 그것은 아주 위험한 일이다. 그러므로 당신은 이단에 빠져 나오지 못하는 지경에 이르지 않도록 호기심을 갖지 말라. 사단은 순수한 이단을 만들어 낼 만큼 어리석지 않다. 이단은 늘 가장 좋은 진리 가운데 섞여 있어서 사람들로 하여금 한 방면으로 그 진리를 받아들이게 하고, 또 한 방면으로는 그들을 이단에 빠지게 한다. 젊은 그리스도인들은 이러한 이단들을 분석하기가 쉽지 않다. 우리는 반드시 이단을 접촉하지 않기를 배워야 하며, 이단을 피하고 거절하기를 배워야 한다. 조심스러운 사람만이 위험을 만나지 않을 수 있다. 호기심이 많은 사람은 쉽게 이단에 빠진다.  


 

이단을 검증하는 열 가지 표준



우리는 이단을 시험할 수 있는 열 가지 검증 방법을 알아야 한다. 열 가지 중에 한 가지라도 해당된다면 그것이 바로 이단이다. 어떤 단체에 진리가 있는가가 문제가 아니라 이단이 있는가가 문제이다. 만일 이단에 해당되는 항목이 하나라도 있다면 틀린 것이다. 왜냐하면 단지 소량의 독이 사람을 죽이기 때문이다. 마치 고운 가루 속에 약간의 누룩만 있어도 온 덩어리를 부풀게 하는 것과 같다. 이러한 이단은 전문적으로 은사가 있는 사람이 아니라면 분별할 수 없다. 이러한 이단을 분별하고 분석하는 것은 말하기는 쉽지만 분별하기는 어렵다. 이단의 종류는 아주 많다. 그러나 아래의 열 가지 항목 중 한 가지라도 잘못 되었다면, 그것이 바로 이단이다. 이제 우리는 열 가지 검증 방법을 알고 이단에 빠지지 말아야 한다.


 

1. 성경의 권위에 관하여


 이단의 첫 번째 항목은 성경의 권위와 관계된다. 디모데후서 3장 16절은, 성경은 하나님의 계시로 된 것으로 모든 그리스도인의 신앙과 행위는 다 성경을 표준삼아야 한다. 이사야 8:20 "마땅히 율법과 증거의 말씀을 좇을지니(표준으로 삼을지니) 그들의 말하는 바가 이 말씀에 맞지 아니하면 그들이 정녕히 아침빛을 보지 못하고"라고 말한다. 이 구절에서 말한 율법과 증거의 말씀은 성경을 가리킨다. 성경은 1차 계시이다. 어떤 사람이 계시를 받았다고 주장한다면 그 계시가 반드시 1차 계시인 성경과 일치해야 한다. 만일 어떤 사람이 다른 것을 표준으로 삼는다면 그것은 잘못된 것이다. 천주교는 성경보다 교회의 권위를 더 중하게 여긴다. 개신교는 성경 이외의 많은 부칙을 가지고 있다. 장로교는 그들이 만든 교회헌법을 기준으로 이단을 감별하고 있다. 성경 외에 더해진 것이 바로 이단이다. 여호와 증인들(Jehovah's Witnesses)은 그들의 성경을 가지고 있다. 크리스챤 사이언스(Christian Science)도 그들의 말이 성경과 동등한 권위를 갖고 있다고 말한다. 무릇 자기의 말을 성경과 동등한 위치에 두고 있다면 그것은 이단이다. 성령의 역사는 반드시 성경을 근거로 움직이신다. 2차, 3차 계시는 반드시 1차 계시인 성경과 일치되어야 옳다. 그러므로 성경 외에 어떤 것을 권위로 삼는 것이 바로 이단이다.


 

2. 그리스도의 인격에 관하여


 이단의 두 번째 항목은 그리스도의 인격에 관한 것이다. 사단은 이 땅위에 처음으로 교회가 산출된 이후로 계속적으로 그리스도의 인격을 공격하였다. 성경은 주 예수님이 바로 하나님이심을 알게 하셨지만(요1:1~3), 사단은 그분이 하나님이심을 시인하지 못하게 했다. 주 예수님의 인격에 관하여 성경이 우리에게 보여주는 것은, 첫째로, 주 예수님이 바로 하나님이시라는 것이다. 둘째로, 주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시고, 셋째로, 주 예수님은 또한 하나님이 세우신 그리스도이시며, 넷째로, 주 예수님은 완전한 사람이시며, 다섯째로, 주 예수님은 부활하여 승천하실 때 여전히 사람이시자 또한 하나님이셨다는 것이다. 부활 후에 하나님은 그분을 주와 그리스도로 삼으셨다. 그리스도 역시 아들 외에는 아무도 아버지를 아는 자가 없다고 말씀하셨다(마11:27). 


이단은 그리스도의 인격 가운데서 하나만을 인정할 뿐 나머지 방면은 인정하지 않는다. 그러나 앞에서 말한 것 가운데서 한 항목만 말살해도 그것은 이단이 되기에 충분하다. 어떤 사람은 주 예수님이 사람이 아니라고 말한다. 즉 예수님의 인성을 부인하는 것이다. 인성을 부인하면 예수님의 구속역사를 인정하지 않는 것이다.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을 부인하는 것이 된다. 어떤 사람은 그분이 하나님이 아니라고 말한다. 이것은 그분의 신성을 부인하는 것이다. 이것은 예수님이 죄를 사하는 권위가 있다는 것을 말살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분의 인격의 한 방면만 말살하더라도 이단이라 칭함을 받기에 족하다. 성경에 대한 사람의 잘못된 이해는 어떤 것은 용납할 수 없고 또 어떤 것은 용납될 수 있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인격에 대하여는 엄격하게 고수하지 않으면 안 된다. 2천년 동안 대다수의 이단이 모두 그리스도의 인격의 어떤 한 부분을 공격한다. 1세기 말 사도 요한의 시대에 이미 이와 같은 상황이 벌어졌다. 만일 어떤 사람이 그리스도와 예수가 서로 다른 사람이라고 말한다면, 그것이 바로 이단이다. 


만일 어떤 사람이 그리스도는 죽었다고 말하면서 죽음에서 부활하신 후 그리스도는 살아지고 살아난 것은 단지 영뿐이라고 말한다면 이것도 이단이다(영지주의). 또 어떤 사람이 그리스도가 영이라고 말하면서, 그분은 하나님보다 아래이고 천사들보다는 위에 있는 하나님의 영이셨는데 이 땅에 와서 사람이 되셨다고 말한다면 그것 역시 이단이다. 사탄은 하나님의 아들과 이 땅에서 사람으로 사신 예수를 분리하거나 또는 땅 위에서 사람이셨던 예수와 죽음에서 부활하시고 승천하신 그리스도를 나누려고 한다. 사람들은 나사렛 사람 예수가 오늘날 하늘 위에 계심을 인정하지 않는다. 악한 자는 하나님의 아들과 사람이신 예수를 나누려고 하며, 사람이신 예수와 죽음에서 부활하신 그리스도가 하나인 사실을 나누려고 한다. 이것이 바로 이단이다. 사단은 그리스도의 인격을 혼란시키는 것을 기뻐한다. 요한일서 3장은 하나님의 아들이 나타나신 것은 마귀 사단의 일을 멸하려 함이라고 말한다(8절). 만일 사람들이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로서 성육신되신 것을 인정하지 않는다면, 이것은 그가 주님께서 마귀를 멸하신 역사를 인정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사람이 그리스도의 인격을 손상시키는 것은 하나님의 계획을 손상시키는 것이다. 


요한 2서 7절은 무릇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신으로 오신 것을 인정하지 않는 자가 바로 그 미혹하는 자라고 말했다. 사람들은 이 땅의 그리스도가 사람이라는 것을 믿지만, 그분이 하나님께서 육신을 입고 오신 분이라는 것은 믿지 않는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아들과 이 땅의 사람을 나누는 것이다. 요한 2서 10절은 "누구든지 이 가르침을 지니지  않고 여러분에게 오거든, 그를 그대의 집에 들이지 말고 인사도 하지 마십시오."라고 말하며,  11절은 "왜냐하면 그에게 인사하는 사람은 그의 악한 일에 참여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라고 말한다. 주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반드시 그리스도의 인격을 수호해야 한다. 요한일서 4장 1절은 "사랑하는 여러분, 아무 영이나 다 믿지 말고, 하나님에게서 나온 영들인지 시험해 보십시오. 왜냐하면 많은 거짓 신언자들이 세상에 나왔기 때문입니다."고 말한다.  2절은 요한이서 2절과 앞뒤가 바뀌었을 뿐 상응하는 구절이다.  3절은 고린도전서 12장 3절과 상통하며, 예수를 시인하지 않는 사람은 하나님께로서 나오지 않았음을 말해 준다. 예수를 시인하지 않는 것은 그를 주 예수로 인정하지 않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신으로 오심은 바로 이 땅에 내려오심의 한 부분이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주가 되심은 바로 영광 안에서의 한 부분이다. 이것이 오순절 때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것이다. 여호와의 증인들은 예수가 죽고 부활하지 않았다고 말하며, 그들은 예수가 십자가에 못 박히고 나서 삼일 후에 거룩하신 하나님이신 그리스도 예수가 출생했다고 말한다. 이것은 이단이지 성경 해석이 다른 것이 아니다. 누구든지 주 예수님의 인격을 분리시키는 사람이 바로 이단이다. 이단은 언제나 주 예수님의 인격을 나누고 파괴시킨다. 


 

3. 사람의 죄에 대하여


 이단의 세 번째 항목은 죄에 대한 것이다. 어떤 이단들은 죄를 제거하려 한다. 성경은 분명하게 사람의 죄를 언급하고 있다. 성경이 말하는 죄에는 두 가지 의미가 있는데, 첫째는 사람이 하나님과 분리된 것이다. 즉 하나님을 떠난 죄이다(단수 죄). 둘째는 하나님을 떠난 사람이 범한 죄의 행위들이다(복수죄). 이 두 종류는 성경 안에서 다 죄이며, 다 사실이다. 어떤 사람은 성품이 좋지만, 하나님 앞에서 여전히 죄가 있다. 어떠한 교리도 이 두 가지 죄의 사실을 뒤집는다면 이단이다. 어떤 사람은 철학으로 사람에게 죄가 없음을 증명하려고 하고, 혹은 과학으로 사람의 신체의 내분비를 연구함으로 사람에게 죄가 없음을 증명하고자 한다. 이를테면 크리스천 사이언스(Christian Science)나 여호와의 증인(Russellites, Jehovah's Witnesses) 등이다. 이들은 다 이단이다. 왜냐하면 만일 사람에게 죄가 없다고 한다면 이것은 바로 구속을 무효화시키는 것이며, 또한 구주가 필요 없다고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러하다면 우리가 전하는 복음은 공허하고 황당한 것이 된다. 그러므로 사람에게 죄가 있다는 사실을 뒤집는 것은 바로 이단이다. 


 

4. 그리스도의 구속에 관하여


 이단의 네 번째 항목은 그리스도의 구속에 관한 것이다. 성경은 분명하게 우리의 죄가 그리스도의 피를 힘입어 깨끗하게 되었다고 말한다(요일1:7). 그리스도의 복음에는 두 가지 요건이 있다. 첫째는 그리스도의 인격이며, 둘째는 그리스도의 역사 곧 사람을 위하여 피 흘려 속죄하신 것이다. 그 가운데 하나가 부족해도 그리스도의 복음이 아니다. 그리스도의 구속에 관한 이 한 가지 일에서, 사람은 사단의 지시를 받아 생각에서 다른 길로 가는 오류에 빠지게 된다. 주 예수님의 역사를 뒤집어서 그리스도의 구속을 폐하려고 한다. 또 어떤 사람은 그리스도께서 흘린 피가 구속을 위한 것이 아니라 단지 순교의 피라고 말한다. 베드로 후서 2장 1절은 거짓교사들이 사람들을 파멸시킬 이단들을 몰래 끌어들인다고 말했다. 그들은 자기들을 값 주고 사신 주인을 부인하여 임박한 멸망을 스스로 불러들일 것이라고 했다. 


 

5. 영원한 심판에 관하여


이단의 다섯 번째 항목은 심판에 관한 것이다. 어떤 사람은 예수의 인격을 믿고 주 예수님의 역사도 믿으며, 사람에게 죄가 있음을 믿고 또한 그리스도의 구속도 믿지만, 영원한 심판을 믿지 않는다. 그들은 죽음에 관한 두 종류의 가르침을 가지고 영원한 심판을 뒤집는다. 첫 번째 그들은 사람의 죽음은 바로 잠을 자는 것이며, 신체가 잠을 잘 뿐 아니라 영혼도 잠을 잔다고 주장한다. 신체는 더 이상 감각이 없으며 영혼도 감각이 없게 되었다고 한다. 따라서 주님이 부활하실 때 깨어나게 되며, 오늘의 죽음은 다만 일단의 시간을 잃어버리는 데 불과하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주님은 죽은 후에도 감각이 있다고 하셨다. 주님은 누가복음 16장에서 하나의 이야기를 하셨는데, 이 이야기에서 나사로와 부자는 죽은 후에 음부에 있으며, 그들은 분명히 감각을 갖고 있음을 보여 준다. 사람들이 이렇게 주장하는 것은 죄의 결과를 경감시키려는 것으로, 이것은 이단이다. 두 번째 어떤 사람들은 두 번째의 죽음이 영원한 형벌이 아니라 완전히 소멸되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리스도께서는 사람의 몸은 죽일 수 있어도 영혼은 죽일 수 없다고 말씀하셨다(마10:28). 또한 불 못에서는 벌레도 죽지 않으며 불이 꺼지지 않는다고 하셨다(막9:48). 불신자들은 영원히 불 못에서 고통을 당하는 것이다. 이것이 하나님의 말씀이다. 이것은 사람이 죽으면 완전히 없어지는 것이 아님을 증명한다. 사람이 두 번째 죽음을 취소하려 한다면, 그것이 바로 이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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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대표적인 이단 변증 잡지인 CRI 저널이 2010년 1월호에 신년 특집으로 지방 교회의 워치만 니와 위트니스 리에 관한 대형 특집 기사(무려 전체 62쪽 중 50쪽에 걸쳐)를 냈습니다.

"우리가 틀렸었다" 이 제목은 CRI 입장에서는 정말 하기 힘든 말이었습니다. CRI는 1980년도에 발간했던 신흥 종교들(The New Cults)이라는 책에서 지방 교회를 이단으로 정죄했었는데 30년 후인 2010년에 "우리가 틀렸었다"고 재평가 작업의 결과를 발표했던 것입니다.

전체 내용은 편집장인 엘리옷 밀러가 썼는데 지방 교회가 왜 성경적이고 정통적인 교회인지를 다룬 본문(총 5부)을 썼고, 서문과 결론의 말은 CRI 대표인 행크 해나그라프가 썼습니다. 그리고 AIA 대표 그레첸 파산티노가 추가 글을 썼습니다. CRI 저널에서 '지방 교회는 가장 성경적이고 정통적인 교회이다'라는 결론의 말과 "우리가 틀렸었다"는 선언은 지방 교회에 대한 이단 시비가 끝났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러한 선언이 왜 중요한지를 알려면 미국과 한국에서 있었던 과정을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미국 내에서 지방 교회는 크게 볼 때 두 근원으로부터 반대를 당했습니다. 첫째는 캘리포니아 버클리를 기반으로 한 "갓 맨"(SCP, 닐 더디)과, "마인드 벤더"(토마스 넬슨사, 잭 스팍스)라는 책으로 인한 영향입니다. 이 책은 주의 이름 부르기, 기도로 말씀 읽기 등의 내용과 같이 현상학적인 공격입니다. 둘째는 "뉴 컬트"(CRI, 월터 마틴)와 "위트니스 리와 지방 교회 신학적 분석에 기초한 교리적인 공격입니다.

그런데 첫 번째 부류의 현상학적 왜곡은 약 5년 동안(1980년~1985년)의 재판을 통하여 지방 교회가 승소함으로써 일단락되었습니다. 그러나 "뉴컬트"와 "위트니스 리와 지방 교회"등의 책들은 그 관점이 어떠하건 신학적, 교리적인 비판이라는 점에서 늘 논쟁의 여지가 있어 왔습니다. 그런데 미국에서 지방 교회 측 지도자들이 CRI 사람들과 직접 만나서 대화하고 그들이 요구하는 자료를 제공하고 6년간의 CRI의 재평가 작업을 통하여 30년 전에 쓴 책이 잘못되었다는 것과 그들이 틀렸었음을 공개적으로 시인하게 된 것입니다. 그들이 이렇게 잘못을 시인하게 된 동기는 중국 본토 조사 여행을 했을 때 CRI가 쓴 책들 때문에 투옥되었던 성도들(17년간)의 놀라운 간증을 듣고 감동되었기 때문입니다. 

17년간 억울하게 투옥되었던 이립홍(李立虹) 형제님은 그들에 대해서 전혀 원망하거나 비난하지 않고 모든 것이 주님의 은혜요 주님의 주권임을 간증했던 것입니다. 이 간증을 듣고 그들은 깊은 감동을 받았던 것입니다. 그들은 참된 그리스도인의 삶을 사는 믿는 이들을 목격하게 된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2010년 CRI 저널 신년 특집호는 미국 내 다른 비판 자료들을(CRI 책을 근거로 했던) 원천 무효로 만들었습니다. 미국의 영향을 받아 왔던 한국에서도 CRI 저널 신년 특집은 매 큰 의미가 있습니다. 한국 내 지방 교회에 대한 비판은 크게 볼 때 두 가지 근원이 있습니다.

첫째는 정동섭, 전용복 등이 미국 책들을 (뉴 컬트) 번역하여 <현대종교 창간호 특집>,<그것이 궁급하다>,<지방 교회의 정체 - 소책자> 등에 소개한 것입니다. 두 번째는 최삼경 목사가 장로교 통합 교단에 보고한 '지방 교회 연구 보고서(1992)'입니다. 이 잘못된 보고서로 인해 지방 교회 측은 최삼경 목사와 월간 "교회와 신앙" 잡지를 통하여 공개 토론을 진행했으며(1996~1998) 그 결과 최삼경 목사가 오히려 삼신론자가 되었습니다. 

CRI 잡지가 출간한 "우리가 틀렸었다"라는 특집호로 인하여 한국에서의 이단 시비 문제가 마땅히 종결되었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현재까지도 현대종교는 여전히 지방 교회에 대해서 전과같이 동일한 주장을 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직접 지방 교회에 대해서 연구한 바가 없었고, 단지 CRI 자료만을 인용해서 지방 교회를 비판해 왔었는데 CRI 측에서 "우리가 틀렸었다"고 지방 교회에 공개적으로 사과한 것에 대해서는 인정하지 않고 있습니다. 현대종교는 오히려 미국과 한국은 사정이 다르다고 묘한 논리를 펴고 있는 것입니다. 지방 교회를 공격할 때는 CRI에서 나온 책(The New Cults)을 번역해서 창간호에서 인용했으면서도 CRI가 30년 전 책 내용에 대해서 "우리가 틀렸었다"고 사과한 것에 대해서는 시치미를 떼고 딴 소리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상식이 있는 사람이라면 CRI의 사과 내용도 반드시 소개했어야 하는 것이지요. 양심불량입니다. 그러나 그들이 이러한 태도를 취하든지 한국에서 CRI 책을 인용했던 모든 개인이나 단체들의 주장은 원천적으로 무효입니다.

최근에 교회와 신앙(인터넷신문)에서는 캐나다 토론토에 있는 성서 침례교 김홍기 목사를 끌어들여서 매우 불공평한 진리 토론의 장을 마련했습니다. 무슨 얘기냐 하면 김홍기 목사로 하여금 지방 교회에 대해서 10회에 걸쳐 마음껏 공격하도록 기회를 준 반면에 지방 교회 측은 보고만 있지 반론할 수 있는 기회를 주지 않는 것입니다. 이것은 마치 권투경기로 치자면 한 쪽 선수를 묶어놓고 때리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10회가 다 끝나자 겨우 지방 교회 측에게 반론의 기회를 주기는 했는데 반론에 대한 재반론을 김홍기 목사에게 또 부여한 것입니다. 정말 소가 웃을 일입니다. 그러니까 김홍기 목사에게는 20번을 공격할 수 있는 기회를 주고 지방 교회 측에게는 10번만 공격하게 한 것입니다.

교회와 신앙은 왜 이런 어리석은 짓을 하고 있는 것일까요? 지방 교회가 두려워서 그런 것일까요? 얼마나 선수가 없으면 캐나다에 있는 김홍기 목사를 등장시킨 것일까요? 그들이 선수로 등장시킨 김홍기 목사는 어떤 사람일까요? 김홍기 목사의 글을 자세히 읽어보면 성경에 입각하여 진리 토론을 하는 진지한 태도는 없고 소위 찌라시 언론인들이 사용하는 자극적인 제목을 붙여서 독자들을 현혹시키고 있다는 인상을 주고 있습니다. 제목과 내용이 전혀 맞지 않고 있습니다. 

이러한 불공평한 교회와 신앙(인터넷신문)의 처사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그들을 위해서 기도하고 우리의 참된 진리가 드러나는 기회로 삼아야 할 것입니다. 사복음서에 보면 주 예수님도 얼마나 불공평한 대우를 받았는지 모릅니다. 예수님을 공격했던 유대인들의 말이 비진리로 드러났듯이 시간이 지나면 김홍기 목사가 아무리 큰소리치고 자극적인 제목을 붙여서 독자들을 현혹시킨다 해도 비진리는 비진리로 드러날 것이고 진리는 진리로 드러날 것입니다. 우리는 김홍기 목사와의 진리 논쟁을 통하여 교회의 높은 진리가 밝히 드러나도록 주님께 간절히 기도할 필요가 있습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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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arryk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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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 월간잡지 H사는 모른 척 시치미 뚝,
미국 재판서 승소 1,190만 달러 손해배상판결로 
이단논쟁에 종지부 찍어

25년 전 1982년에 발행한 한국 기독교월간잡지(H사) 창간호는 "한국상륙 16년 활개치는 워치만니 신흥종교의 정체"라는 제목으로 미국에서 재판 중에 있던 문제의 책자인 '갓 맨(The God-men)'과 '마인드 밴더스(The Mind Benders)'를 번역 게재하여 특종으로 낸 바가 있다. 그 창간호에는 미국에서 발행된 책자의 일부 내용만을 왜곡 번역하여 지방 교회가 이단인 것처럼 독자들에게 인상을 심어주어 지금까지 지방 교회를 이단으로 낙인을 찍어 왔다.

동 잡지사는 이단을 규명하는 잣대가 불분명한 가운데 지방 교회를 이단으로 규정하는 기사를 게재했으며 계속 이단감별사의 역할을 해왔다. 일개 잡지사에 불과한 기관이 이단감별사로 활동해 왔으며 이단으로 정죄하는 기관으로 굳어져 정통적인 신학의 검증을 거치지 않는 가운데 지방 교회를 이단으로 낙인을 찍은 것이다.

위트니스리가 미국으로 건더갔던 60년도는 미국 히피족들이 유행할 때로서 위트니스리의 메시지는 방황하는 젊은 대학생, 청년들에게 굉장한 호소력을 가졌다. 그들 무리 중에 20대의 젊은이들이 위트니스리의 사역에 많이 동참함에 따라 기존교회들은 자기 교인들을 흡수해 갈까봐 반대가 일어나 지방 교회를 공격하기 위해 '갓 맨'과 '마인드 밴더스'라는 책을 발간하게 된 것이다.

그 후 지방 교회 측은 미국 이단검증단체인 SCP(Spiritual Counterfeits Project)와 '갓 맨 (The God-men)'의 저자인 '닐 더디' 에게 전화하고 편지하며 직접 찾아가 대화를 요청했지만 거절당해 부득이 캘리포니아 주 상급 법원에 정식 재판을 제기하게 되었다. 재판소는 SCP가 인터바시티 출판사(Inter-Varsity Press)를 통해 미국 등에서 배포한 'The God-men' 책자가 위트니스리와 지방 교회에 대해 여러 방면에서 거짓되고 명예훼손임을 판결했다. 

이로 인해 5년간 오랜 재판결과 1985년에 지방 교회 측이 승소하여 재판부는 원고인 지방 교회 측에게 1,190만 달러를 지불하도록 판결하게 되었다. 그러나 피고인 인터바시티 출판사와 닐 더디는 그 직전에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 고의적인 파산신청을 냄으로써 지방 교회는 이단논쟁에서 벗어나게 되었다.

그 후 지방 교회를 이단으로 주장했던 닐 더디는 이미 사망했고 또한, 2006년 1월 풀러신학대학 이름으로 성명서를 발표했는데 성명서에서 지방 교회가 신학적 면에서 정통적이고 역사적이며 성경적인 단체로 받아들인다고 밝힌 바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방 교회를 이단으로 정죄했던 H사는 이 사실을 발표하지 않았을 뿐 아니라 이단 낙인 꼬리표를 그대로 남겼다. 

이것이 한국교계 안에서 한번 이단은 영원한 이단으로 규정되는 관행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이다.

따라서 본 신문은 독자들의 알 권리와 공공의 이익을 위해 동 기사를 게제하는 바이며 특정 단체를 옹호하는 내용의 기사가 아님을 천명하는 바이다.

2007년 12월 3일(월요일) 제7호 - 교회성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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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arryk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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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교회―내가 보고 듣고 겪은 이야기 (3)

 

 

세째, 제가 제 주관적 관점에서 지방교회가 그리스도의 몸으로서 제 역할을 감당할 수 있는 모델이 된다고 생각하는 또 다른 이유는 통계적으로 미국내 교회의 90%가 100명 이하의 성도들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러한 이유로 대부분의 교회는 목사님이 목회만으로 생계를 유지하게 할 수 있는 교회가 전체 교회의 10%도 되지 않는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목사들이 남아 돌지만 다른 직장을 쉽게 구할 수 없는 변두리나 시골에는 목회자들이 잘 오지 않으려고 해서 목회자 없는 곳이 많습니다. 어떤 목회자가 없는 교회는 이웃 교회 목사님이 오셔서 설교를 하던지 어떤 곳은 비디오로 예배를 드리는 곳도 있습니다.


하지만 지방교회는 초대교회가 가정교회에서 시작되었던 것처럼 많은 곳이 가정교회에서 시작됩니다. 우리는 목회자가 없이는 교회가 정상적인 교회로서의 역할을 할 수 없다는 관념과 문화에서 신앙생활을 해 왔습니다. 하지만 지방교회에 와서 제가 본 것은 모든 사람이 말씀을 공부하고, 묵상하고 말씀을 전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마틴 루터가 종교개혁을 하고 성경을 번역한 이유가 아닙니까?


오늘날 그 어느 시대 보다도 여러 성경과 주석, 기독교 서적이 나와 있고 성도들도 높은 교육수준을 가지고 있습니다. 원하기만 한다면 인터넷으로 여러가지 성경말씀에 관한 역사적, 신학적 배경을 찾을 수 있고, 이 시대의 영성있는 말씀이나 강의를 들을 수 있습니다. 그것이 이시대에 하나님께서 찾으시는 교회, 즉 모든 성도들이 주일날 하루 교회에 와서 말씀 듣고 가는 것이 아니라 매일 말씀을 공부하고 묵상하고 누리고 주일날 와서 그 누린 말씀을 같이 나눌 수 있는 것 이것이 만인 제사장 교회, 모든 교회의 지체가 몸의 구성원으로 제 역할을 하는 교회라고 생각 합니다.


어떤 분은 지방교회는 목사가 없는데 만약 신학을 공부하지 않은 평신도들이 말씀을 전하면 혼돈과 무질서 그리고 이단적인 것을 어떻게 관리하냐고 합니다. 저도 처음에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몇달이 지난 후 그러한 의구심은 해소 되었습니다. 첫째로, 교파같은 신학교가 (2년제, 또는 3년제 과정으로 대졸자 이상 대상) 그리고 중년훈련 (6개월? 1년) 같은 것이 몇개의 캠퍼스 또는 방송통신대와 비슷하게 운영되며 (대부분 교회를 올바로 섬기기 위해 자발적으로 시간과 물질적으로 희생하며 학교를 다니는 것이지 여기서는 졸업후 교파처럼 목회자 사례에 대한 개념이 없습니다.) 둘째로, 평신도들을 위해 모든 서적과 주석들이 오픈되어 있습니다. 제가 방문한 대부분의 지방교회 형제님들 집은 마치 목회자 집들 같이 주석 등 성경연구와 말씀에 관한 책들로 채워져 있었습니다.


세째로, 일반교회는 보통 부목사님, 전도사님 등 리더가 성경공부를 인도하면 다른 평신도는 그냥 듣고 끝나버리는 것이 대부분의 경우인데 여기서는 다들 미리 말씀을 읽고, 묵상하고 와서 토론하는 식입니다. 이렇게 토론함으로써 잘못된 해석(?)이나 비성경적 교리 등은 걸러지고 교정되어집니다. 또, 어떤 질문에 대한 해답이 없을 때는 다른 장로님이나 다른 책 등을 통해 설명을 합니다. 물론 명쾌한 설명이 없을 때도 있겠지요. 그리고 어떤 특정한 교리가 옳고 틀림에 대한 일방적 강요가 없습니다. 예를들어, 여기서는 침례를 성경적인 것으로 해석하지만 세례받은 사람에게 침례를 받아야 성찬에 참여할 수 있다는 강요를 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사소한 생각 차이나 교리로 그리스도의 몸을 나누는 것은 성경적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네째, 지방교회는 한 몸으로서 하나 되는 것을 강조합니다. 여기처럼 인종과 문화, 언어를 초월해서 예배드리는 곳을 보지 못했습니다. 이렇게 하나 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이 문제는 한국교회가 극복해야 할 큰 문제입니다. 왜냐하면 같은 한국인이면서도 1세대와 2세대가 하나가 되지 못하고 갈라져 나가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우리의 천연적인 것에 역행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지방교회는 매일 우리의 천연적인 삶을 죽이고 그리스도가 내 안에 살아야 된다는 것을 반복해 강조합니다.


또 다른 하나는 지방교회 사람들은 자기를 드러내는 것에 아주 민감합니다. 마치 항상 그리스도가 아닌 자기 자신이 드러나지 않을까 항상 의식하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이러한 때에 저는 지방교회를 알게 되었고, 지방교회의 성경적 가르침과 초대교회로의 회복운동은 저에게는 제 신앙 생활에 있어서 하나의 신선한 충격이었고 미래 교회의 희망을 보았습니다. 지금 미국이나 한국이나 기독교인들이 점점 줄어들고 있다고 합니다. 하지만 지방교회는 오히려 교회와 성도가 늘고 있습니다. 특히 젊은이들이 늘어나고 있다는 것입니다. 제가 궁금해서 몇몇 대학생 젊은이들에게 물어 봤더니 그들도 순수한 말씀에 대한 갈망과 성경적 교회 모습에 오게 되었다고 합니다.


제가 말씀드리고자 하는 것은 지방교회가 오직 유일한 하나님이 원하시는 교회라고는 말할 수 없습니다. 지방교회에서도 지방교회가 교회의 완성을 위한 과정이지 목적이 아니라고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모든 교회가 지방교회처럼 돼야 한다는 것도 모든 기존 교회들이 지방교회처럼 돼야 된다는 것도 아닙니다. 교회를 교파교회에서 지방교회로 옮긴다고 다 훌륭한 신자가 되는 것도 아니고 많은 사람들은 교파나 천주교에서 신앙이 더 성장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천주교회는 천주교회대로 개신교는 개신교대로 지방교회에 없는 다른 장점들도 있습니다. 또한 앞으로도 천주교회는 천주교회대로 여러 교파는 그 교파 나름대로 역할과 사명이 있을 것입니다.


천주교가 타락했을 때도 순수함을 가진 믿는 이들이 있었고 천주교가 타락했을 때 마틴 루터와 칼빈 등의 종교 개혁이 있었습니다. 기독교 역사를 보면 역사는 반복된다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타락과 개혁이 반복되는 가운데 영적으로 조금씩 빛을 보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많은 경우 영적인 빛을 보고 깨달은 사람들이 이단으로 몰려 순교하거나 핍박받은 때도 있었습니다. 많은 목사님들과 성도들이 지금이 기독교의 쇠퇴기 또는 타락 시대(특히, 미국과 한국에서)로 보고 있습니다. 미국은 매년 2500여개의 교회가 문을 닫고 한국도 500여개의 교회가 매년 사라지고 있다고 합니다. 저는 이것을 결코 부정적으로만 보지 않습니다. 정치적, 기독교 문화 프로그램, 사회개혁, 구복적 신앙, 또는 도덕을 강조하여 성장하는 교회는 결코 오래가지 않을 것입니다. 물론 그러한 것을 통해서 하나님을 만나고 경험할 수도 있겠지만, 그것이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교회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러한 것들이 꼭 나쁜 것이 아니라 할지라도 하나님이 허락하신 것과 원하시는 것은 분명히 차이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지방교회에 와서 깨달은 것은  교회는 그리스도의 생명으로 유지되고 성장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생명은 교리가 아닙니다. 그리스도의 생명은 매일 매일 우리 삶에 있어서 영의 양식이요 체험입니다. 제 자신도 이것을 깨닫고 저 자신도 "그리스도의 생명이 관념에서 끝나지 않게 하시고 순간 순간 마다의 체험이 되게 하소서"하고 기도하게 됩니다.


저는 지방교회가 다른 기존 교회들이 보지 못한 그리스도의 생명과 몸에 대한 이상을 더 확실하게 보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제 기억으로는 제 교회 생활 중에 거의 그리스도의 몸에 대한 설교를 들은 일이 많이 없습니다. 어떻게 말하면 그리스도의 몸이라는 개념이 지금 일반 교회 시스템에서는 잘 적용이 되지 않는 것 같습니다. 지방교회는 각 교회당 100여명 이상 넘지 않도록 합니다. 왜냐하면 100명이 넘으면 몸의 역할을 잘 감당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한 지역에 있더라도 또 하나의 교회를 세우게 됩니다. 그리고 재정적으로 다른 교회들이 새로 세운 교회를 재정적으로 지원합니다. 또한 약한 교회에 가서 섬기도록 장려합니다. 대만은 지방교회의 역사가 이제 70년이 넘었고 미국도 40년 이상이 되었습니다. 대만이나 미국의 일부 성도들은 공동체 생활을 한다고 합니다. 제가 다니는 사이프러스 교회의 한 미국 젊은 청년도 아이오와에서 자신이 자랄 때 열 몇 가정이 공동체 생활을 했다고 합니다. 이것은 지방교회가 메노나이트 같은 사람들이기 때문이 아니라 서로가 형제, 자매로서 그리스도의 몸으로 사랑하게 되면서 자발적으로 이루어지는 현상입니다. 지방교회는 이러한 것을 장려하거나 언급하지도 않습니다. 그냥 자유롭게 그러한 공동체가 자발적으로 이루어지기도 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현재 대부분의 교파 교회들은 너무 개교회 위주입니다.


몇년전 제가 다니던 교회에서 부흥강사로 한국에서 오신 목사님께서 자신이 섬기시는 교회에 어떤 자매가 광주에서부터 서울까지 매주 예배를 보러 온다고 하면서 칭찬과 자랑을 하던 기억이 납니다. 그때 그 목사님의 교회는 몇 만명이 모이는 교회인데, 광주에 교회가 없는 것도 아닌데 5시간 이상 걸려서 버스를 타고 오는 그 신도가 그렇게 자랑스러우실까 하고 의아해 여긴 적이 있었습니다. 여기서 만난 목사님이셨다가 저보다 1년 전에 지방교회로 오신 분이 저보고 "교파에 있을 때는 나무 가지만 보았는데 여기 지방교회에 오니 몸을 볼 수 있었다"라고 말씀하신 기억이 납니다. 저도 이제 어렴풋이 그 뜻을 이해하게 됩니다.


오래전 김동호 목사님 설교 중 예화가 생각납니다. 김동호 목사님께서 본 교회 장로 피택 받으신 분의 장로 고시에 같이 동행했다가 거기 장로 고시를 보러 오신 분들이 모인 곳에서 한 분이 김동호 목사님께 교회의 머리가 누구냐고 물으면 어떻게 대답 해야 하냐고 물었을 때 김동호 목사님께서 "시험관이 목사면 목사라고 하고 시험관이 장로면 장로라고 하라"고 대답하셔서 모두가 웃었다는 이야기입니다. 이 이야기가 새삼스럽게 기억되는 것은 이러한 것이 우리 일반교회들의 현 주소라는 것입니다.


간단하게 설명하려고 했던 것인데 계속되면 책이 한 권 나올 것 같아서 이만 줄여야 되겠습니다. 이 글을 지금까지 읽어 주셔서 감사하고 혹시 제가 잘못 알고 있는 것이 있다고 생각되시면 지적해 주시기 바랍니다. 제가 여기서 하나 더 좋아하는 것은 말씀은 아주 보수적이지만 그리스도의 생명, 교회 외의 어떤 교회 전통이나 예식, 또는 율법적인 것으로부터는 아주 자유합니다. 그래서 어떤 분의 표현으로는 지방교회는 보수적이면서도 굉장히 진보적이라고 합니다. 


마지막으로 우리가 어느 교회에서 어떤 모습으로 신앙 생활을 하던 우리가 모두 그리스도의 몸에 대한 이상을 더 확실히 볼 때 천주교, 동방정교, 개신교 교파를 떠나서 모든 교회가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교회의 모습으로 나아갈 수 있게 된다고 확신하고 또 그렇게 되기를 기도 합니다. 마지막으로 제가 좋아하는 크리스챤 작가인 필립 얀시의 책(교회, 나의 고민 나의 사랑)에 나오는 마지막 예화를 소개하고 이 글을 끝내려고 합니다.


작곡가 이고르 스트라빈스키가 한번은 대단히 어려운 바이올린 연주곡을 썼다. 곡을 받은 연주자는 몇 주간 연습한 끝에 스트라빈스키에게 와서, 연주할 수 없다고 말했다. 연주자는 최선의 노력을 기울였지만 곡이 너무 어려웠다. 어려운 정도가 아니라 연주 자체가 불가능했다. 작곡가가 대답했다. "이해합니다. 내가 의도하는 바는 어떻게든 연주해 보려고 애쓸 때 나오는 그 소리입니다." 아마 우리 하나님께서 애초에 생각하신 교회의 모습이 이와 유사하지 않을까! --- Philip Yancy, “Church: Why Bother?”의 마지막 글에서.(끝)

 

 

Moses' Essay on Local Church(1)


Third, my personal opinion, I think LRC is a role model for functioning as Body of Christ. Statistically, 90% of churches in U.S. have less than 100 or less members. Because of this reason, most churches cannot support pastor‘s family financially. And, this is one of the reasons why many churches close down in small towns because they cannot support pastors financially. Some churches have service through video, or visiting pastors preach two or three different churches on Sundays.


However, LRC starts as home church as in early Christianity. We have been grown up in the Christian culture & concept that it was not a proper church if there were no pastors or priest. However, I witnessed at LRC that all people can read, study, meditate bible and preach gospel. Isn’t it the reason why Martin Luther translated bible so that all people can read bible instead of a few limited number of priest can access to read bible?


In 21st century, education level is higher than any other previous generations. There are so many books, commentaries, and even we can easily get biblical, historical or theological answers through internet. Also, we can listen to all the best spiritual sermons or lectures through internet. I think this is what God is looking for in this generation. ― All people read, study and meditate God’s word and preach instead of passively listening of one pastor’s prepared sermon once a week. And I think this is the Priesthood of all believers in the bible, the Body of Christ ― all believers functioning as a body ― Apostles, Prophets, teachers, workers of miracles, Healing, help others, administration, and speaking tongues.


Fourth, LRC emphasize one Body of Christ. I haven’t seen any other church worshiping with different nationality, languages or cultures together. It is not easy thing at all to be one with people with different language or cultures. It is against our nature to be one with people who are different in culture or language. So, it is only Christ lives in us so that we only die every day on the cross, and Christ should be replace our nature. I understood this as a concept, but I saw that they do practice oneness at LRC. Another thing I noticed was that LRC people are very careful to express themselves. They are very conscious to express Christ instead of themselves.


So, it was a kind of fresh impact on me that the way they teach and practice biblically. And I see a brightness of future churches in LRC. Right now churches and church members are decreasing in U.S. and in S. Korea. However, LRC members are increasing worldwide. Especially, many young people are increasing at LRC. I asked a few college age young people how they came to LRC. They said they saw LRC was more evangelical and biblical church than any other denominational churches.


I am not trying to say that LRC is the only church God desires. LRC says LRC is not a completion of church but a road to a completion of church. I don’t think all other churches should be like LRC. I don’t think one will be a better Christian if one moves to LRC from other denominational churches. Many people may be growing better at different churches. Catholic has its own good aspect or denominational also has some good programs(?) or own roles for spiritual growth.


When Catholic was degraded, there were pure believers too. Also, there was reformation by Calvin and Martin Luther. When you read the church history, you can see the history repeats itself. Through degradation and reform, we can see more spiritual light. Sometimes, those who saw the spiritual light was accused as “cult” and persecuted or even martyred. Many pastors or believers consider our time is in spiritual degradation. In U.S. lately, about 2500 churches are closed yearly, and in S. Korea, about 500 churches close its doors every year. I don’t see this is not a negative phenomenon. If church grows with mixed-shamanism, politically, different Christian programs or emphasizing morality, it may not last long. Of course, some may accept Christ and experience the love of God in those churches. I don’t think those churches are not what God desires. Even though it may not be a bad things or bad churches, even though it may help somehow help bring people to Christ, I think there is a difference between God’s allowance and God’s desire. What I realized and confirmed at LRC was that church should be maintained grow with Life of Christ. The Life of Christ is not doctrine. The Life of Christ is our daily spiritual food and experience. When I learned this, I also pray for the Life of Christ can be my daily experience moment by moment not remains as a concept.


I think LRC understood and saw the vision of the Body of Christ more clearly than other denomination churches. In my memory, I haven’t heard or studied much about the Body of Christ in my previous church life. Maybe, the concept of the Body of Christ does not fit in traditional churches. Most LRC maintain about 100 or fewer members per church. If more than 100 members per church, it may not function properly as a Body. But, what if there are over 100 members? Then, there will be another meeting hall will be branched out in same locality. So, for example there are 4 meeting halls at different locations in Anaheim. And if all members get together in one location (once in a while), it will be over 400 members. It is similar to the concept of cell meeting at traditional churches. (If one cell gets bigger than more than 7 families, it branches out to another cell.) And, other churches help financially if new church starts at different locality. Also, it is encouraged members to go and help a new church if starts at nearby locality. LRC history in Taiwan has over 70 years, and LRC in US has been over 40 years. I heard from a brother visited Taiwan told me that some brothers and sisters in Taiwan LRC live as community life. One of the young men in Church in Cypress told me his grew up in Iowa and his family and other dozen LRC families lived together as a community when he was young. LRC is not Mennonites, but sometimes, they live together voluntarily because they understand deeper the Body and naturally practice the one Body of Christ. LRC never encourage or mention this kind of life, but it voluntarily composes these communities when they want to. However, most denominations churches are too individualistic.


A few years ago, one of the guest speaker from Korea bragged in his sermon that one sister from Kwangju (a city about 160 miles south west from Seoul) comes to his church every Lord’s day to attend Sunday service. I wondered why that pastor was so proud of the woman who rode a bus for more than 5 hrs for attending his church in Seoul. His church was a mega church with over 50,000 members, and there were hundreds of churches in KwangJu too. A sister who was a pastor and came to LRC one year earlier than me told me she only saw branches when she was in denomination, but now she sees a Body in LRC. Now, I started to understand a little about a Body too. That is the main difference between LRC and other denomination churches. If one prefers to attend Lord’s Day service, some fellowship, some bible study and believe that is enough for salvation, it might be O.K. to go to traditional church. But, most members at LRC understand the meaning of the Church deeper than that.


Long time ago, Rev. Dong Ho Kim from Korea came to Bethel Korean Church for 3 day evangelical meetings. I still remember one of the stories he spoke in the meeting. One time, he accompanied one of the candidates for an elder candidate in his church for Elder test. There were some other candidates from other church for interview. While waiting outside for entrance, one of the candidates jokingly asked a question to Rev. Kim, “What is the correct answer if the interviewer asks a question who is the Head of the Church?” Rev. Kim said he also jokingly answered, “If the interviewer is a pastor, say it is a pastor, if the interviewer is an elder, and then say it is an elder.” I think this is reality of current situation of most churches, especially in Korea.


I tried to explain briefly, but ended up in 10 pages. If you have any opinion or advice, please correct me. I am still in learning process, and I need to see more light to grow. Also, I believe that when we see the Body of Christ more clearly, then we can come together as one body as God desires, not dividing as Catholic, Greek Orthodox or different protestant denominations. And I pray for that. Lastly, I would like to finish my testimony with a story form Philip Yancy’s book ―

 

The composer Igor Stravinsky once wrote a new piece that contained a difficult violin passage. After several weeks of rehearsal the solo violist came to Stravinsky and said that he could not play it. He had given it his best effort but found the passage too difficult, even unplayable. Stravinsky replied, “I understand that. What I am after is the sound of someone trying to play it. Perhaps something similar is what God had in mind with the church.


I remember hearing a similar illustration from Earl Palmer, a pastor who was defending the church against critics who dismissed it for its hypocrisy, its failures, and its inability to measure up to the New Testament’s high standards. Palmer, a Californian at the time, deliberately chose a community known for its cultural unsophistication. “When the Milpitas High School orchestra attempts Beethoven’s Ninth Symphony, the result is appalling,” said Palmer, “I wouldn’t be surprised if the performance made old Ludwig roll over in his grave despite his deafness. You might ask, ‘Why bother?’ Why inflict on those poor kids the terrible burden of trying to render what the immortal Beethoven had in mind? Not even the great Chicago Symphony Orchestra can attain that perfection.


“My answer is this: The Milpitas High School orchestra will give some people in that audience their only encounter with Beethoven’s great Ninth Symphony. Far from perfection, it is nevertheless the only way they will hear Beethoven’s message.” I remind myself of Earl Palmer’s analogy whenever I start squirming in a church service, Although we may never achieve what the composer had in mind, there s no other way for those sounds to be heard on earth. --- Philip Yancy, “Church: Why Bother?(End)

 

 

"이 글을 쓴 강모세 형제님은 현재 미국 사이프러스 교회에서 교회생활하고 계십니다. 혹시 간증 내용에 있어서 궁금하거나 추가적인 질문이 있으시면 강모세 형제님의 페이스북(https://www.facebook.com/moses.kahng)을 통해서 추가 교통을 하실 수 있습니다."


출처 : http://www.localchurch.kr/16052

2016/03/05 - [지방교회] - 지방교회―내가 보고 듣고 겪은 이야기 (2)

2016/03/04 - [지방교회] - 지방교회―내가 보고 듣고 겪은 이야기 (1)




WRITTEN BY
rarryk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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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교회―내가 보고 듣고 겪은 이야기 (2)



첫 번째, 왜 지방교회라는 이름인가? 하는 것입니다. 지 방교회는 지방교회 사람들이 만들어 낸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이 "당신은 어느 교파입니까?" "우리는 교파가 없습니다."라고 대답하게 되고, 다시 "그럼 일반 교파들하고 틀린 것은 무엇입니까?"라고 물으면, "우리는 초대교회같이 한 지방에 한 교회라는 것이 틀립니다."라고 대답하게 됩니다. 그래서 다른 사람들이 "지방교회"라고 부르게 됐던 것이 현재 일반적인 이름이 되었다고 합니다. 원래는 회복교회 또는 회복모임이라고 합니다. 제가 처음 지방교회가 한 지방 한 교회라는 뜻이라고 들었을 때는 로스앤젤레스에 수만 명이 들어가는 하나의 교회라는 뜻으로 생각해서 더 이상 이야기도 듣지 않으려고 했었습니다. 얼마 후 한 지방 한 교회는 서신서에 나오는 에베소에 있는 수백 개의 교회를 에베소 교회라고 했던 것처럼 한 지역에는 교파 이름 등으로 분열된 교회들이 아닌 그 지방 이름을 따라 교회가 된다는 뜻이었습니다.


또 지방교회에 대한 가장 많은 비판 중에 하나는 지방교회가 교파 교회에 대한 비판이 심하다는 것입니다. 제 가 이제 1년 반 정도 지방교회 사람들과 성경공부 하고 지내면서 보면 이러한 교파나 천주교에 대한 비판이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하지만 그 비판이 목회자나 신자, 교리들을 비판하는 것이라기보다는 그 시스템(특히 교회 내 계급주의, 율법주의, 교파주의, 하나의 몸을 이루지 못하는 것)을 비판하는 것입니다. 엄밀하게 말하면 성경적 교회론으로 보았을 때, 지금의 많은 교회들은 성경적 교회들이 아니라는 이야기입니다. (다음 페이지에 좀 더 자세하게 설명되어 있습니다.) 이러한 비판은 지방교회에서만 하는 것이 아닌 일반 개신교 내 신학자, 목사님들에게서도 있는 비판들입니다.


제가 인터넷으로 그럼 개신교 신학자들은 교파에 대해 어떻게 이야기하는지 찾아 보았습니다. 교파 신학자들도 교파에 대해 비성서적인 것을 인정합니다.


사 도행전과 서신서들에는 다양한 교회들이 나오며 상당한 갈등들이 노출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회의 분열이란 생각할 수 없었다. 성령의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는 권면은 분열의 징후가 이미 있었다는 사실을 암시하지만, 초대교회는 핍박 중에서도 소수의 이단 운동 외에는 하나 됨을 유지하였다. --- 콘스탄틴 대제가 4세기에 이르러 기독교를 공인하고 얼마 후에는 로마제국의 국교로 선포하면서 교구 간의 균형과 신뢰가 무너지기 시작하였다. --- 특히, 기독교가 국교화되면서 로마교회는 권력과 부귀가 집중되었다. --- 리처드 니버는 "교단주의의 사회적 요인들"이라는 저서에서 "기독교는 흔히 그 창시자의 뜻을 무시하면서 외면적 성공을 이룩하였다"고 지적하고, "기독교에서 교단주의는 인식되지 않는 위선"이라고 비판하였다. 왜냐하면 "교회의 분열이 국가, 인종 또는 경제적 집단들의 캐스트제도로 나누는 세속적 분리를 긴밀히 추종"하 기 때문이다. --- 교회 지도자 중에 정치적 권력과 영광에 도취되는 자들은 교권주의라는 덫에 걸려 자기중심으로 교회를 분리하게 되는 것이다. --- 한국의 경우에도, 지역주의는 교회정치를 좌우하는 실질적 요인으로서, 대통령선거와 같은 정치구도에서 그 실상을 분명히 드러낸다. 특히, 한국의 일부 교단은 철저한 지역교회로서 지역정치와 불가분의 관계를 가지고 있다. 유럽의 경우에도, 서유럽에서 남부는 모두 로마교회, 북부는 루터교회, 중부는 칼빈파 교회이며, 동유럽은 모두 그리스교회가 장악하고 있다. 그리고 장로교회는 스코틀랜드의 반잉글랜드 지역정치와 깊이 연관되어 있다.


또 하나의 분리요인은 이데올로기에 의한 것이다. 이데올로기란 흔희 '주의'라 고 표현되는 절대사상으로서, 특정한 이념을 중심으로 모든 사고를 재편성한다. 이러한 사고는 전투적이어서, 자기의 이념에 동의하지 않는 자는 적으로 간주하고 전투적 자세를 취하게 된다. --- 따라서, 특정한 개념이나 교리나 사상을 절대시하고 추구하는 이데올로기의 도입은 기독교를 세속화시키고 급기야 분열을 결과하게 만든다. 장로교회나 감리교회나 회중교회는 정치 이데올로기를 중심으로 형성된 교파들이다. 성경은 특정한 정치체제를 명령하지 않는다. --- 또한, 보수주의나 진보주의도 교회를 분열시키는 이데올로기들이다. 본래 보수나 진보는 상황에 따라 취하는 자세에 불과한 것이다. --- 그런데, 이러한 일시적 혹은 상황적 자세를 절대화하고 획일화하여 자기를 영원히 속박한다면 매우 불행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사안에 따라서 변화할 것은 변화하고 지킬 것은 지켜야 한다.


한 편, 특정한 개념을 중심으로 분열하는 경우도 있다. 침례교회는 침례를 절대시화 하여 완전히 몸 전체를 물속에 담궈야 유효하다고 믿고 대다수의 교회가 행하는 세례를 무효라고 주장한다. --- 성결교회는 성결을 중심적 이상으로 생각하지만, 성결교인이 다른 교파 교인보다 더 성화되었다는 증거는 없다. 성화를 강조하는 것은 좋지만, 성화라는 교리를 중심으로 교파를 분리했다는 사실 자체가 진정한 거룩함과 모순되는 것이다. 개혁교회는 끊임없이 개혁이라는 이념을 중시하지만, 사실은 새로운 개혁을 거부하고 과거의 개혁을 절대화하는 모순된 태도를 취하기도 한다. --- 성경은 결코 교파의 필요성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 고전 12장은 몸과 지체의 관계를 설명해 주고 있는데, 여기서 몸은 그리스도를 머리로 하는 하나의 교회를 의미하며 지체는 개인 혹은 지역교회를 의미한다. 성경은 그리스도의 복음에 관한 한 분명한 통일성을 요구하지만, 신앙방식이나 정치형식이나 비본질적 사안에 대해서는 다양성을 허용하고 있다. 교회의 머리이며 주인이신 예수 그리스도는 십자가를 지기 전에 교회의 하나됨을 위하여 간곡히 기도하였다: "아버지께서 내 안에, 내가 아버지 안에 있는 것같이 저희도 다 하나가 되어 우리 안에 있게 하사, 세상으로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믿게 하옵소서."(요 17:21). 교회의 하나됨은 전도와 선교의 효과를 급증시킬 것이며, 반대로 오늘날 교회의 분열은 복음화에 가장 큰 장애가 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파 분열을 전혀 죄악으로 인정하지 않고 돌이키지 않으며 하나의 교회가 회복되도록 노력하지 않는 것은 가슴 아픈 일이 아닐 수 없다. 도널드 블레쉬는 "교회의 개혁"에서 "우리 시대에서 교회의 재연합 없는 진정한 개혁은 없다"고 주장하면서, "기독교가 하나될 수 있는 길은 모든 교회가 그리스도의 십자가 아래로 나아와 회개하는 길"이라고 말하였다.


또 하나 기억나는 글은 몇 년 전에 중국 지하교회 지도자 였던 연 형제(1997년 하나님의 기적적인 인도하심으로 가장 삼엄한 정치범 감옥에서 탈출하여 독일로 망명하였음)의 동역자인 주 형제(현재 미국으로 망명하여 있음)가 제가 섬기던 베델교회에 와서 간증 집회를 하였던 적이 있습니다. 저도 은혜를 받아서 연 형제의 간증 책을 사서 읽었었는데, 그 가운데 글 중에 중국에도 오래전 선교사들의 복음 전파로 여러 교파로 나누어져 있었답니다. 하지만, 1970년대 핍박의 기간들을 지나면서 중국의 지하 교회들은 하나로 되었습니다. 그러던 것이 1980년대 중국이 조금 문을 열자 선교사들이 중국에 들어 왔습니다. 그리고는 하나로 연결되어 있던 지하교회 들을 돕는다는 열정 아래 서로의 교파로 끌어 들이기 위해 물질로 로비(?)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2년이 못되어서 중국의 지하교회들은 12개 이상으로 나누어져 버렸고 서로를 사랑하기는 커녕 서로 이단이라 하면서 상종조차 하지 않는 상태로 되어 버렸습니다. 연 형제는 로마서 10장 2절 "내가 증언하노니 그들이 하나님께 열심이 있으나 올바른 지식을 따른 것이 아니니라"를 인용하면서 외국 선교단체(교파)들의 순수한 동기로 선교하지 못함을 안타까워 했던 글을 기억합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아무리 좋은 것을 한다 할지라도 그것이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인지를 알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것이 아무리 우리의 순수한 동기에서 시작했다 할지라도 하나님의 뜻이 아닌 우리의 생각으로 할 때, 그것은 사탄이 원하는 것이 되고 맙니다.


지 방교회와 일반 교파(특히 장로교나 침례교, 감리교)들과는 여러가지가 다릅니다. 첫째, 지방교회는 목사님들이 없습니다. 지방교회는 만인 제사장을 주장합니다. 모든 교인들이 말씀공부를 하고 준비하고 주일날 신언을 합니다. 제가 지방교회에 오고 나서 가장 많이 들은 것은 그리스도는 교회의 머리요 우리는 몸이라는 것입니다. 전에는 관념적으로 알고 있던 것을 지방교회는 실제적인 것으로 받아 들입니다. 우리가 몸의 역할을 제대로 하는 것은 한명의 목사가 일주일간 설교 준비를 하고 설교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성도가 매일 말씀을 읽고 묵상하고 주일을 위해 준비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모든 성도가 준비돼서 온 주일예배는 항상 기쁨으로 넘칩니다. 일반 교회는 어떤 때는 목사님의 설교가 좋을 때도 있지만 안 그럴 때도 있습니다. 하지만 여기는 한사람이 준비가 잘 안되었더라도 다른 사람이 말씀이 잘 준비되어서 오기 때문에 매주 은혜가 넘침니다. (어떤 사람은 목사님이 아닌 사람들이 말씀을 준비하고 전하는데 은혜가 되겠냐고 질문합니다. 아닙니다. 여기서의 말씀은 오히려 대부분의 일반교회 설교 말씀들 보다 말씀의 깊이가 더 있습니다. 사실, 목사, 전도사, 선교사 또는 신학교 출신, 또는 목회자 가족 비율이 일반 교회보다 높습니다.)


둘 째, 교회론입니다. 여기는 매 성경공부나 주일예배 때 그리스도, 그 영, 생명, 교회가 거의 빠지지 않습니다. 그 만큼 성경에서 그리스도와 교회는 서로 뗄 수 없는 관계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단지 우리가 구원받고 함께 모이기 때문에 우리가 교회이다 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교회를 그렇게 아는 것이 잘못된 것이라고 말할 수 없지만 지방교회에 와서 교회에 대해 공부하면서 그것은 피상적인 이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워치만 니와 위트니스 리가 쓴 책들 중에도 그리스도와 교회에 관한 책들이 큰 비중을 차지합니다. 한 부문을 인용하면,


엡 1:23에 --- 이 교회는 '만물 안에서 만물을 충만하게 하시는 분의 충만'이 그리스도의 몸이다. 에베소서 1장 22절은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위하여' 만물 위에 머리가 되셨다고 말하지 않고, 교회'에게' 머리가 되셨다고 말한다. --- '교회에게'라는 말은 일종의 전달을 함축한다. --- 이러한 전달 안에서 교회는 그리스도께서 도달하신 모든 것, 즉 죽은 사람들로부터 부활하신 것과 모든 것을 초월하여 앉으신 것과 만물을 그분의 발 아래 복종시키신 것과 만물 위에 머리의 권위가 되신 것을 그리스도와 함께 나눈다. 그러한 교회가 그리스도의 충만인 그분의 몸이다. 우리는 모두 우리의 타고난 생명이나 구성에 속한 그 어떤 것도, 우리의 타고난 존재에 속한 그 어떤 것도 교회의 일부가 될 수 없다는 것을 반드시 깨달아야 한다. 오직 우리 속으로 넣어지신 그리스도의 그 부분만이 교회의 일부이다. ---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우리와 함께, 우리 안에서 행하신 모든 것이 교회를 위한 것임을 깨달아야 한다. 여러분이 구원 받은 지 얼마나 오래되었든, 여러분이 주님을 얼마나 사랑하든, 여러분이 얼마나 영적이든, 여러분의 생명이 얼마나 성장했든 여러분이 교회를 위하지 않는다면 무언가 잘못된 것이다. 하나님의 의도는 다만 우리를 구원하시는 것이 아니고 다만 우리가 영적인 사람이 되거나 그분을 사랑하는 것만도 아니다. 하나님의 의도는 부활하시고 승천 하시고 보좌에 앉으신 그리스도, 만물 위에 머리이신 그리스도를 우리 안으로 넣는 일을 하시어 우리를 교회의 일부가 되게 하시는 것이다. 우리는 모두 교회를 이러한 방식으로 보아야 한다. ― 위트니스 리


윗 글을 읽으시고 이해가 잘 안되실지 모르겠습니다. 저도 1년 쯤 지나 여러 책과 성경공부를 통해 이제 조금 이해되기 시작하니까요. 왜냐하면 그리스도의 몸은 관념이 아니라 실재이기 때문입니다. 교회가 성경에서 그렇게 중요한 것인데도 저는 너무나도 피상적으로 이해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만약 성경의 교회론을 제대로 공부하고 이해하고 지방교회의 예배를 보신다면 왜 지방교회가 일반 교파교회를 비판한다는 이야기를 이해하시게 됩니다.(계속)

 

 

Moses' Essay on Local Church(2)

 

First Question, why called “Local Church”? - When I heard “Local Church” meant there should be a church in one locality. I thought there should be only one “Local Church” in a city. So, I imagined that it would be a one mega church building instead of many small church buildings. But, later I understood it meant they called “church in Ephesus” for all the churches in Ephesus. There were no different name churches in early Christianity. There were no denominations or divided churches in early Christianity. They only called the church name by the name of locality.


Second Question, Why “local church” criticize denominations? - This was most bothered question to me.


So, I searched what other denominational theologians say about denominations. Most evangelical theologians also acknowledge denomination is non-biblical. Following is an article regarding denominations:


The rise of denominations within the Christian faith can be traced back to the Protestant Reformation, the movement to “reform” the Roman Catholic Church during the 16th century, out of which four major divisions or traditions of Protestantism would emerge: Lutheran, Reformed, Anabaptist, and Anglican. From these four, other denominations grew over the centuries.


The Lutheran denomination was named after Martin Luther and was based on his teachings. The Methodists got their name because their founder, John Wesley, was famous for coming up with “methods” for spiritual growth. Presbyterians are named for their view on church leadership?the Greek word for elder is presbyteros. Baptists got their name because they have always emphasized the importance of baptism. Each denomination has a slightly different doctrine or emphasis from the others, such as the method of baptism; the availability of the Lord’s Supper to all or just to those whose testimonies can be verified by church leaders; the sovereignty of God vs. free will in the matter of salvation; the future of Israel and the church; pre-tribulation vs. post-tribulation rapture; the existence of the “sign” gifts in the modern era, and so on. The point of these divisions is never Christ as Lord and Savior, but rather honest differences of opinion by godly, albeit flawed, people seeking to honor God and retain doctrinal purity according to their consciences and their understanding of His Word. --- The Downside of Christian Denominations:


There seems to be at least two major problems with denominationalism. First, nowhere in Scripture is there a mandate for denominationalism; to the contrary the mandate is for union and connectivity. Thus, the second problem is that history tells us that denominationalism is the result of, or caused by, conflict and confrontation which leads to division and separation. Jesus told us that a house divided against itself cannot stand. This general principle can and should be applied to the church. We find an example of this in the Corinthian church which was struggling with issues of division and separation. There were those who thought that they should follow Paul and those who thought they should follow the teaching of Apollos, 1 Corinthians 1:12, "What I am saying is this: each of you says, “I’m with Paul,” or “I’m with Apollos,” or “I’m with Cephas,” or “I’m with Christ.” This alone should tell you what Paul thought of denominations or anything else that separates and divides the body. But let’s look further; in verse 13, Paul asks very pointed questions, "Is Christ divided? Was it Paul who was crucified for you? Or were you baptized in Paul’s name?” This makes clear how Paul feels, he (Paul) is not the Christ, he is not the one crucified and his message has never been one that divides the church or would lead someone to worship Paul instead of Christ. Obviously, according to Paul, there is only one church and one body of believers and anything that is different weakens and destroys the church (see verse 17). He makes this point stronger in 3:4 by saying that anyone who says they are of Paul or of Apollos is carnal. Some of the problems we are faced with today as we look at denominationalism and its more recent history:


1. Denominations are based on disagreements over the interpretation of Scripture. An example would be the meaning and purpose of baptism. Is baptism a requirement for salvation or is it symbolic of the salvation process? There are denominations on both sides of this issue and have used the issue to separate and form denominations.


2. Disagreements over the interpretation of Scripture are taken personally and become points of contention. This leads to arguments which can and have done much to destroy the witness of church.


3. The church should be able to resolves its differences inside the body, but once again history tell us that this doesn’t happen. Today the media uses our differences against us to demonstrate that we are not unified in thought or purpose.


4. Denominations are used by man out of self-interest. There are denominations today that are in a state of self-destruction as they are being led into apostasy by those who are promoting their personal agendas.


5. The value of unity is found in the ability to pool our gifts and resources to promote the Kingdom to a lost world. This runs contrary to divisions caused by denominationalism.


I remember other story of the book (The Heavenly Man) of brother Yun, who is one of China’s house church leaders, a man who despite his relative youth has suffered prolonged torture and imprisonment for his faith. By God’s miracle, he had escaped from the most fortified prison in China and settled in Germany in 1998. In his book, it says: Throughout the 1970s there had been just one house church movement in China. …. Suffering had broken down all denominational walls in the Chinese church. When China’s borders started to open up in the early 1980s, many foreign Christians wanted to know how they could help the church in China. ……. However, after a few years these same mission organizations started putting other books at the top of the bags of Bibles. These were books about one particular denomination’s theology, or teaching that focused on certain aspects of God’s Word. ….. After a while our foreign friends started giving even more things to us. They gave money, cameras, and other things they felt were necessary to help us serve the Lord more effectively. I clearly remember how this caused division among the leaders. In our evil hearts we asked, “Who get the most books?” or, “What was that brother giving more money than me?”


It was a real mess. Within a year or two the house churches in China split into ten or twelve fragments. This was how so many different house church networks came into existence. It was easy for a house church to split. …. Within a short time a new movement would be established. In their zeal to help, our foreign brothers were actually causing the house churches to split and be weakened. “For I can testify about them that they are zealous for God, but their zeal is not based on knowledge.” Romans 10:2.


There are some differences between LRC and other denomination churches (especially, Presbyterian, Baptist and Methodist). First, Local Church doesn’t have pastors or priest. LRC follows Priesthood of all believers in the bible. So, all members are encouraged to participate in bible studies and prepare for Lord’s Day’s prophesying (preaching?). Most commonly heard after I came to LRC was Christ is the Head of the Church, and we are the body of Christ.


Then, what LRC says about Church? At LRC, almost at every Lord’s Day or bible study, they talk about Christ, The Spirit, Life, and The Church. It is so important that Christ and the Church are not separable in Christianity. Let me quote one of Witness Lee’s articles about the Church:

 

“It is not merely because we have been saved and meet together that we are the church. We cannot say that this is wrong, but is a very superficial understanding. We need to see that the normal, genuine, proper, and real church comes out of this great power… This church is the Body of Christ, “the fullness of the One who fills all in all” (Eph. 1:23). Christ, who is the infinite, unlimited God, is so great that He fills all things in all things. Such a great Christ needs the church to be His fullness for His complete expression. This church comes into being… from the power of the resurrected, ascended, and enthroned Christ, who is now the Head over all things to the church. Ephesians 1:22 does not say that Christ has been made head over all things for the church, but to the church… “To the church” implies a kind of transmission… In this transmission the church shares with Christ all His attainments: the resurrection from among the dead, being seated in His transcendency, the subjection of all things under His feet, and the headship over all things. Such a church is Christ’s Body, His fullness.


We all must realize that nothing of our natural life, nature, or makeup, nothing of our natural being, is a part of the church. Only the very portion of Christ that has been wrought into us is a part of the church…… Regardless of how many years you have been saved, how much you love the Lord, how spiritual you are, or how much growth in life you have, as long as you are not for the church, there is something wrong. God’s intention is not merely to save us, nor is it merely that we be spiritual or love Him. God’s intention is to work the resurrected, ascended, and enthroned Christ, who is the Head over all things, into us to make us a part of the church. We all need to see the church in this way.” ― Witness Lee

 

You may not understand above article. I also have been known the Church superficially and in concept and in doctrine. But, I started to understand about the Church after reading Watchman Nee & Witness Lee’s books and bible study. If you study ecclesiology (church), and attend the LRC meetings, you may understand better.(to be continued)


 

"이 글을 쓴 강모세 형제님은 현재 미국 사이프러스 교회에서 교회생활하고 계십니다. 혹시 간증 내용에 있어서 궁금하거나 추가적인 질문이 있으시면 강모세 형제님의 페이스북(https://www.facebook.com/moses.kahng)을 통해서 추가 교통을 하실 수 있습니다."


출처 : http://www.localchurch.kr/church/15910



2016/03/04 - [지방교회] - 지방교회―내가 보고 듣고 겪은 이야기 (1)



WRITTEN BY
rarryk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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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교회―내가 보고 듣고 겪은 이야기 (1)

 

 

이글을 쓰면서 – 저는 지난 48년 동안 신앙생활을 하면서 전혀 들어 보지 못했던 "지방교회"라는 곳을 2010년 가을에 접하게 되었습니다. 워치만 니와 위트니스 리의 책, 그리고 지방교회 형제, 자매들을 접하면서 신앙의 순수함과 신선함이 있다는 것을 느꼈고 조금 더 알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서 성경공부 등을 참석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48년 교회생활을 하면서 전혀 듣도 보도 못한 이들에 대해 경계심과 의구심도 함께 있었습니다. 그러면서 몇 달 동안 책을 읽고 인터넷을 찾으며 그들의 성경공부, 가정집회, 주일집회를 참석하면서 이 교회의 중심이 그리스도와 순수한 복음에 있다는 것을 확신하고 (저희 딸 유니스도 주일집회와 토요 중고등부 집회를 참석하고서 똑같이 생각했습니다) 저와 유니스는 사이프러스에 있는 교회를 참석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면서도 몇 달 동안 워치만 니 책, 인터넷 등을 통해 신학적으로 교리적으로는 아무 문제가 없지만, A 지방교회가 말하는 한 지방, 한 교회 그리고 천주교와 교파교회에 대한 비판이 심하다는 인터넷에서 본 지방교회에 대한 비난에 대해서는 한편으로 불편한 것이 있었고 그후 더 많은 책과 교제를 통해서 거기에 대한 의혹이 어느 정도 해소될 때까지는 시간이 더 걸렸습니다. 그리고 제가 아는 대부분의 가족과 친구들에게 지금 새로 나가는 교회에 대해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하는 딜레마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왜냐하면  많은 지방교회에 다니시는 분들 경험으로도 A에 대한 설명이 처음 듣는 사람들에게는 쉽게 이해가 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지방교회에서 신앙생활을 하신 분들도 교회에 대한 이해를 하기까지 적게는 몇 달에서 몇 년이 걸렸다고 합니다.)


그래서 제가 아는 한 제가 지금까지 아는 분들 대부분이 지방교회에 대해 알지 못하는 분들이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처음 지방교회를 알게 되어 제가 아는 목사님들과 신앙생활을 오래 하신 분들께 여쭈어 보았지만 대부분이 모르고 계셨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제 1년 반 정도 출석하면서 제 나름대로 본 것과 느낀 것(대체적으로 저의 주관적 경험과 지식)을 제가 이해하는 수준에서 최대한 간단하게 설명 드리려 합니다.


보통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들이 자라온 환경과 문화 안에서 생각하고 경험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가 자라온 환경과 문화가 그의 삶의 기준이 됩니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신앙도 그러한 문화나 환경의 영향을 받게 됩니다.


오래전에 이재철 목사님 책에서 읽었던 것으로 아직까지 잊혀지지 않는 글 속에 오래전 미국 선교사님이  한국 교회 신학과 목사님들의 설교 내용이 조금 비성서적이고 이단적인 이유가 한국의 역사가 문화는 유교적이요 정신은 불교적이고 영적으로는 샤머니즘이기 때문에 그렇다고 설명했다고 합니다.


그렇다고 우리가 미국의 교회와 신학이 정통이라고 말할 수도 없을 것입니다. 유럽의 신앙도 2000년 전 복음이 유럽에 전파됐을 때 순수 유대교적 해석과 헬라 철학의 해석이 달라서 아리우스와 아타나시우스가 삼위일체 논쟁으로 싸웠던 것처럼, 로마의 가장 큰 이교도 명절인 태양절을 기독교가 국교가 된 이후 크리스마스로 바뀐 것처럼 복음도 조금씩 어떤 기존 문화의 영향을 받아 왔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제가 조금씩 의문을 가지고 생각해 온 것이 많은 교회와 믿는 이들이(나를 포함해서), 이러한 기독교 문화를 복음이라고 착각하면서 살아 가고 있다는 것을 깨닫기 시작했습니다. 거의 매주 주일날 교회 예배에 출석하고 헌금하고 봉사하고, 기도하고 성경말씀을 읽는 것이 신앙생활이요 착한 행위가 나타나면 성령의 열매라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교회도 그렇습니다. 현재 많은 교회들이 있는데, 이 교회들이 정말 성경적이요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모습의 교회들일까? 많은 목사님들이, 성도들이 현재의 교회들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비판하지만 대부분 그것이 기복신앙을 가르치는 목사, 정치 목사, 장로들 또는 질나쁜 교인들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정말 그럴까요? 이러한 교회의 문제들이 일부 목사나 장로들 때문에 일어나는 걸까요?


12년 전이었나 봅니다. 제가 다니고 있던 베델 한인 교회에 리처드 포스터라는 목사이자 교수가 와서 금요일 저녁에 강의를 했던 일이 있었습니다. 제가 중고등부에서 그 시간에 봉사를 하고 있었기 때문에 강의에 참석하지는 못하고 책을 몇권 사서 가져 왔습니다. 한권의 책 내용 중에 현대 교회는 중학생 수준 정도의 교리공부, 성경공부 등의 여러 프로그램만 반복적으로 하고 있다고 하면서 실질적으로 필요한 것은 교인들이 영적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다 라고 쓰여 있었던 것이 기억납니다. 이것이 또한 저에게는 하나의 풀 수 없는 의문으로 남아 있었습니다. 그러면 제자훈련, 전도폭발 등 교회 안에 있는 프로그램들이 있는데 이러한 것들이 나쁜 것인가? 저는 나름대로 그래도 안 하는 것 보다는 신앙에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사실 영적 성장이라는 의미를 정확하게 알지 못했고 여러 영성에 관한 책도 읽었었지만 사실 저에게는 좋은 책이었다 정도였지 어떤 깊은 깨달음을 주지는 못했습니다. 지금 와서 제 나름대로 분석한 것은 제가 말씀에 어두웠었던 것이 첫째 이유요 또 하나는 훌륭한 신앙인은 모든 교회집회에 출석 잘하고 십일조 생활하고 열심히 봉사하는 것이 영적으로 자란 사람이라는 일반적 신앙적 기준이 되는 교회 문화 속에서 생활하고 있었던 이유도 있었을 것입니다.


기억에 남는 교회에 대한 책들 중에 대천덕 신부(R. A. Torrey III)의 "토지와 자유(The land & biblical economics)"라는 책이 있습니다. 교회에 대한 부분중에 일부 인용을 하면,


3세기 동안에 걸쳐서 기독교 신자들은, 자발적인 희년을 지켰다(가진 것을 자진해서 서로 나누는 일을 했다). 그래서 마침내는 그리스도를 따르는 자들이 너무나 많아지자 콘스탄틴 대제는 기독교를 승인하지 않으면 안 되겠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러나 법의 변개에 대해서는 일언반구 언급이 없다. --- 세월이 가는 사이에 로마법은 바알법으로 둔갑하여 이탈리아의 불요불굴의 자작농들은, 새로운 지주 계급의 땅에서 농노로 전락하였다. "갈 때는 로마가 벽돌로 지어졌더니 떠날 때는 대리석이 되었더라"는 바로 그 바알법 때문에 로마제국은 결국 붕괴되고 말았다. 그러나 교회는 그 법을 고치려 하지 않았다. 고치기는 커녕 오히려 교회는 북아프리카 전역이 기독교에 반발하여(성경에서 따온) "땅은 하나님의 것이다"라는 기치 아래 이슬람 교도가 될 지경에 이르도록 지주들의 지배하에 있었다. --- 16세기에 와서 재침례파 교도들(현재의 메노나이트 교파)이 토지개혁을 부르짖었을 때 가톨릭측과 개신교측은 합세하여 이들을 무자비하게 처형하였다. 유럽의 거의 전역에서 교회는 최대의 지주가 되고 말았다. 개신교와 가톨릭 사이의 싸움의 실제 이슈는 결코 종교문제가 아니라 땅 문제였다.


또한 헨리 조지는 그의 책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옵소서!(Thy Kingdom Come)"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습니다.

 

초기 기독교에서는 하나님 나라의 도래를 기도할 때 하늘에 있는 나라를 뜻한 것이 아니라 이 땅 위의 나라를 뜻했던 것입니다. --- 그 당시 로마 제국은 모든 종교에 대하여 관대한 편이었습니다. --- 그들이 정복한 민족의 종교에 대하여 간섭하지 않는다는 것 또한 로마의 자랑거리였습니다. 그러나 그들도 사회개혁의 대운동―정의의 복음―만은 핍박했던 것입니다. 로마 당국은 그 운동의 현황을 비천한 어부와 노동자와 노예들을 통해서 듣고 알았던 것입니다. 기독교의 계시는 곧 인간평등의 교리였으며 하나님 아버지의 교리였으며, 인류애의 교리였습니다. --- 결국 로마의 특권층은 기독교를 받아들이게 되긴 하였지만, 그들은 이 새로운 신앙을 완전히 곡해했던 것입니다. 그것은 초기의 순수한 기독교가 아닌, 대부분의 특권층의 하인격으로 변질된 기독교였습니다. 하나님의 기본적인 부성이나 인류의 기본적인 형제애를 설교하는 대신, 그들 고위 성직자들은 복음의 순수한 진리 위에, 모든 인류의 아버지이신 하나님은 인간을 차별대우하는 분이며, 그분의 뜻과 명령은 수많은 인류를 보상도 없는 노역에 강제로 동원시키는 엄청난 불의에 기초를 두고 있다는, 실로 불경스럽기 짝이 없는 교리를 접목시켰습니다. 기독교 자체에는 결함이 없었습니다. 결함은 그들이 설교한 기독교의 종류에 있었습니다.


또 하나의 책은 필립 얀시의 "우리가 알지 못했던 예수(The Jesus I never knew)"라는 책이었습니다. 이 책도 10여년 전에 읽었던 책인데 항상 내 마음 깊은 곳에 내가 지금까지 알고 있던 예수님, 그리고 앞으로 내가 지금까지 모르고 있었던 예수님은 어떤 분일까 라는 의문이 항상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런 여러가지 의문 때문에 다른 역사 신학자나 불교에 관한 책들도 읽었고 무슬림, 공자, 노자, 뉴에이지에 대한 책들도 읽었습니다. 이러한 과정이 조금씩 나를 바깥에서 기독교를 바라보는 시각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모든 문제는 각 종교나 철학에서 그 가르침이 하나의 문화로 변질될 때 사람들은 눈에 보이지 않는 그 안에 있는 본질 보다는 눈에 보이는 문화를 보고 판단한다는 것입니다. 역사 신학자들의 책들을 보면, 보통 4 - 5세기를 기독교의 타락이 시작된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신약의 초대 교회에서 천주교라는 거대한 종교조직이 시작되면서 타락이 시작되고 종교개혁 이후도 교파라는 종교조직이 생명의 종교를 정치적, 사회적, 도덕의 종교로 변질시킨 것입니다.


제가 처음 워치만 니와 위트니스 리의 책들과 지방교회를 접하고 제가 이 교회에 대해서 아는 것이 전혀 없었기 때문에 시간이 될 때마다 인터넷으로 지방교회에 대해 찾아 보기 시작했습니다. 부정적인 글들도 꽤 많았고 물론 크리스천 리서치 인스티튜트와 풀러 신학교 등에서 몇년간 연구 끝에 지방교회가 정통이라는 사이트도 보았습니다.


제가 계속 워치만 니 책을 읽고 성경공부를 참석하면서 의문을 가진 것은 왜 30년 넘게 이단으로 취급되어 온 지방교회가 왜 갑자기 이단이 아니게 되었나 하는 것입니다. 또한 저와 같이 많은 기독교인들이 지방교회는 물론 워치만 니도 모르고 있었습니다. 제가 아는 어떤 젊은 목사님에게 지방교회에 대해서 물어보니 모른다고 하고 워치만 니는 혹시 중국 선교사가 아닌가라고 저에게 되물었습니다. 그래도 계속 목사님들이나 신앙 생활을 오래하신 분들께 기회가 될 때마다 혹시 지방교회에 대해서 물어보니 대부분은 지방교회에 다녀 보지는 않았지만 주위에 다니는 친구나 친지 등을 통해 아신다고 하면서 지방교회와 교인들에 대해 긍정적인 응답을 하셨습니다. 그래서 저는 조금 편한 마음으로 지방교회 모임들에 출석하면서 관찰하고 의문 가는 것은 질문하면서 계속 워치만 니와 위트니스 리 책도 읽어 갔습니다.


그리고 한국의 크리스천 신문들을 인터넷으로 보면서 마침 지방교회와 장로교 통합 총회의 이단 감별사 최삼경 목사와의 지상 토론에 대한 글들을 보게 되었습니다. 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장로교 합동측과 함께 한국에서 가장 큰 교단인 통합에서 1990년대에 지방교회의 삼위일체가 잘못된 것이라고 이단 규정을 해서 지방교회에서 공개 토론을 요청했고 공개 토론 중에 통합측 대표로 나온 최삼경 목사가 주장하는 정통 삼위일체론이 사실은 삼신론인 것으로 밝혀져 공개적인 망신을 당한 일입니다. 기독교 신문들은 한국 대형교단들이 정치적 수단으로 마녀 사냥식 또는 아니면 말고 식의 이단 규정을 비판하는 사설들도 있었습니다.(계속)

 

 

Moses' Essay on Local Church(1)


Introduction – In Fall 2010, I came to know “Local Church” which I even hadn’t heard for last 48 years in my church life. First, I read books of Watchman Nee, Witness Lee, and I even went small meetings of brothers in Local Church. After I read a few books and attended meetings, I felt their belief was pure and biblical, and I wanted to know more about local church.


However, I was cautious and had a doubt about them because I didn’t have any knowledge about them. So, I searched internet, read books, attended their bible studies, home meeting, and even attended Lord’s Day table meetings (Sunday worship). As I get to know more, I felt this meeting was based on biblical teachings. A couple of times, I took my daughter (Eunice) to Lord’s Day table meetings, and asked her opinion. She felt they were true believers and wanted to go this church after a couple of youth meetings on Saturdays. So, I and Eunice started to go to Church in Cypress starting January, 2011.


However, I had some uneasyness regarding criticism on Local churches on the internet that A. Local church insists one church on one locality, criticism on Catholic churches and denomination churches. And, it took additional a few months to understand better about local church through reading books, attending bible studies. Also, I had a dilemma how to explain about “A” because it is not easy to understand about ecclesiology (church). Even, some brothers said it took a few months to a few years to understand “Church” in the bible.


So, as far as I know, I assume most people I know do not know about “Local Church.” When I asked to family friends and some pastors about “Local Church”, most of them didn’t know at all, and even those who heard about “Local Church” had a very superficial knowledge. So, I would like to tell my personal experience and knowledge as briefly as I can about “Local Church” after attending for about one and a half year.


For most of people, they think and experience based on their culture and cultural environment they were brought up. And the culture and cultural environment becomes their norm in their life.


Naturally, our faith also, will be influenced by our culture and cultural environment. I still remember a book by Pastor Jae Chul Lee - which said that one American missionary described Korean Christians as – non-biblical and cultic at some point because Koreans are culturally Confucius, philosophically Buddhism, and spiritually shamanism.


Then, we cannot say American or European churches and theologies are all biblical either. In church history, they had been fighting each other even in 2nd – 4th century for Judaic or Hellenistic interpretations. In the 4th century CE, Christianity imported the Saturnalia festival hoping to take the pagan masses in with it. The problem was that there was nothing intrinsically Christian about Saturnalia. To remedy this, these Christian leaders named Saturnalia’s concluding day, December 25th, to be Jesus’ birthday. And I also have started to doubt about my faith and church life. I had these doubts for a long time, but I wanted to find out more earnestly since a few years ago (I had more time reading starting 2007 because of slow economy). As I read books and bible, I started to realize that many believers (including me) believe Christian culture as gospel. If we attend church service every Sunday, offering, serving, praying, reading bible, we think we are good Christians.


How about churches? If a church belongs to certain denomination, then is this church becomes biblical church? If a pastor were graduated certain seminary and ordained by certain denomination, then is this pastor becomes biblical pastor? Many Christians and pastors criticize and concern about degradation of modern churches. But, is this degradation take place because of some pastors, elders or some Christians?


12 years ago, a famous spiritual book author, pastor, seminary professor, Richard Foster, came to Bethel Korean Church, and gave a lecture. I was serving youth group at that time, and I bought a few books of his. I still remember one passage that many churches in these days repeat certain programs to church members, but more important thing is helping people to grow spiritually. When I read this book, I had questions that then teaching doctrine, discipleship, or tress Dias are not for spiritual growth? At that time, I thought spiritual growth meant more like attending bible study & prayer meetings, offering and serving at church activities & ministries. Actually, many pastors taught that way too.


Another book I remember was “The land & biblical economics” by Rev. R.A. Torrey III. If I quote some passages about church,


“A few world about the Christian church and the Bible land laws. For 3 centuries Christians practiced the “free will jubilee” (sharing their goods voluntarily) and even emperor Constantine felt obliged to recognize Christianity. However, nothing was said about changing the land laws. When Rome conquered Carthage 200 years before Christ, the laws of Baal, under which Carthage had been governed from the time it was settled by Jezebel’s relatives at the time of Ahab, stimulated the greed of many Romans. In time the old Roman system was replaced by the Baal system and the sturdy independent farmers of Italy became serfs on the estates of the new landowning class. The same system which “found Rome brick and left it marble” also led to the decline and fall of the Roman Empire. But the church did not offer to change it. On the contrary, The Church became dominated by the landlords to the extent that all of North Africa rebelled against Christianity and became Mohammedan under the slogan (taken from the Bible). “The land belongs to God”. The same pattern was repeated in the Middle East. …………. But by the 16th century, when the Anabaptists (modern Mennonites) called for Biblical land reform, both Catholics and Protestants persecuted them ruthlessly. In nearly all of Europe the Church had became the biggest landlord. It the wars between Protestant and Catholic the real issue was not religion at all but land.


Henry George also said in his book “Thy Kingdom Come”


Early Christianity did not mean, in its prayer for the coming of Christ’s kingdom, a kingdom in heaven, but a kingdom on earth. If Christ had simply preached of the other world, the high priests and the Pharisees would not have persecuted Him, the Roman soldiery would not have nailed His hands to the cross. Why was Christianity persecuted? Why were its first professors thrown to wild beasts, burned to light a tyrant’s gardens, hounded, tortured, put to death, by all the cruel devices that a devilish ingenuity could suggest? Not that it was a new religion, referring only to the future. Rome was tolerant of all religions. It was the boast of Rome that all gods were sheltered in her Pantheon; it was the boast of Rome that she made no interference with the religions of peoples she conquered. What was persecuted was a great movement for social reform – The Gospel of Justice – heard by common fishermen with gladness, carried by laborers and slaves into the Imperial city. The Christian revelation was the doctrine of human equality, of the fatherhood of God, of the brotherhood of man. It struck at the very basis of that monstrous tyranny that then oppressed the civilized world; it struck at the fetters of the captive, at the bonds of the slave, at the monstrous injustice which allowed a class to revel on the proceeds of labor, while those who did the labor fared scantily. That is the reason why early Christianity was persecuted. And when they could no longer hold it down, then the privileged classes adopted and perverted the new faith, and it became, in its very triumph, not the pure Christianity of the early days, but a Christianity that, to a very great extent, was the servitor of the privileged classes. And, instead of preaching the essential fatherhood of God, the essential brotherhood of man, its high priests engrafted on the pure truths of the Gospel the blasphemous doctrine that the All-Father is a respecter of persons, and that by His will and on His mandate is founded that monstrous injustice which condemns the great mass of humanity to unrequited hard toil. There has been no failure of Christianity, The failure has been in the sort of Christianity that has been preached.


Another book I remember was “The Jesus I never knew” of Philip Yancy. I think I read this book about ten years ago. After I read this book, I had a curiosity and a desire to find out the Jesus I never knew. I thought it would be my life-time spiritual journey to know better & deeper to know Jesus. And because of these questions, I read different Christian books and even other religion books including Confucius, Buddhism, Islam, and New Ages. And these books slowly made me to see the Christianity in different perspectives. What I realized was that when the teachings of different religions were distorted when the teaching was deteriorated or mixed with the culture. So when we see the religion, we see the visible culture instead of the invisible real truth in it.


French historical theologian, Jacques Ellul, said in his book “The Subversion of Christianity” that….

 

We set up pastoral positions or benefices with rectors and bishops, etc. We then fill these posts with people we think suitable. But this is the opposite of the movement presented in the Epistles, in which the Holy Spirit movement presented in the Epistles, in which the Holy Spirit gives to the church people who have the gift of love or the word or teaching, and the church has to find a place for them even if it had not anticipated doing so. … No doubt some will reply that God is not a God of disorder, but a God of order. Of course he is. Unfortunately the whole of the Old Testament shows us that God’s order is not that which we conceive and desire. God’s order is not organization and institution (cf. the difference between judges and kings). It is not the same in every time and place………. Thus, if his church wants to be faithful to his revelation, it will be completely mobile, fluid, renascent, bubbling, creative, inventive, adventurous, and imaginative. It will never be perennial, and can never be organized or institutionalized. ….but because it is alive; it is Life – that is, as mobile, changing, and surprising as life. If it becomes a powerful fortified organization, it is because death has prevailed….. The body of Jesus is undoubtedly a human body like any other. His blood circulation and digestion obey normal physiological laws. This is not affected by his divine sonship. He knows hunger and fatigue. He suffers, etc., as all others do. Yet in and under this, with no bodily change, the Holy Spirit intervenes, God himself in his totality. ….. It is more satisfying for Christians to build up an organized church, Christian institutions, a Christian society and politics. Subversion takes place, not because society is wicked, but because revelation is socially intolerable. …. We are possessed by an obsessional desire to justify ourselves, to declare that we are righteous, to be righteous in our own eyes, to seem to be righteous in the eyes of others, of neighbors and acquaintenance, and finally to be declared righteous by the whole group to which we belong. In human conduct and sociological movements this thirst for self-justification is constant and fundamental.


When I came to know “Local Church” and books of Watchman Nee & Witness Lee, I searched sites of local churches whenever I have a time because I didn’t know anything about them. There were some negative sites about them. Also, there were sites that “Local Church” was orthodoxy and evangelical at Christian Research Institute and Fuller Theological Seminary.


When I started know about “Local Church”, my major concern was why they had been known as “cult” for last 30 years. And, what made them now considered orthodoxy. Also, most Christian friends I know didn’t know “Local Church” or Watchman Nee or Witness Lee. So, I kept asking to different pastors, elders or those who had been in church life for a long time. Most of them didn’t know about “Local Church”, but some of them said they hadn’t visited “Local Church”, but they know some of them through business or personal friendship, and they described them as good Christians. So, I decided to attend their meetings and study more about them.


At that time, I also read articles in Christian newspapers through internet. I read an article about debate between “Local Church” in Korea and Rev. Sam Kyung Choi of Korean Presbyterian general meeting(통합 총회). Those who have seen this article may know the story. In 1990s, Korean Presbyterian Tong Hap (one of the largest denomination in Korea) labeled “Local Church” as “cult”. So, “Local Church” requested debate to Tong Hap, and Rev. Sam Kyung Choi said the trinity of “Local Church” as modalism, but, Rev Choi’s argument was not correct. Instead, his belief of trinity was turned out as tritheism (threegods).


So, Rev. Choi and Tong-Hap were humiliated and criticized by other denominations. Even, Christian newspaper articles criticized big denomination churches for the way of research and labeling “cult” easily for political reason without in-depth study.(to be continued)

 

 

"이 글을 쓴 강모세 형제님은 현재 미국 사이프러스 교회에서 교회생활하고 계십니다. 혹시 간증 내용에 있어서 궁금하거나 추가적인 질문이 있으시면 강모세 형제님의 페이스북(https://www.facebook.com/moses.kahng)을 통해서 추가 교통을 하실 수 있습니다."


WRITTEN BY
rarryk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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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교회(local Church) 또는 작은 무리(The Little Flock) 등으로 알려진 이 모임은 일반적으로는 그의 영어 이름인 워치만 니(Watchman Nee)(1903-1972)로 알려진 니 수추(Ni Shu-Tsu)에 의해 중국에서 1920년대에 시작되었다. Nee는 그의 할아버지가 회중교회 목사이고 그의 부모들은 신실한 감리교신자들인 중국인 그리스도인 가정에서 태어났다. 그는 자신이 하나님을 위하여 사람들을 깨우는 목적을 가진 종치는 자라는 것을 자신에게 끊임없이 생각나게 하려고 본래 이름인 니 수추(헨리 니)를 니 토생(워치만 니)으로 바꿨다.

이름뿐인 종교적 청년기로부터 그는 감리교 복음전도자인 도라 유(Dora Yu)에 의해 회심되었고, 곧이어 독립 선교사인 마가렛 바버(Magaret E Barber)와 함께 일하기 시작했는데 그는 그녀를 통해 존 넬슨 다비(John Nelson Darby)와 폐쇄파 플리머스 형제회의 저술들을 만나게 되었다. 그는 교회조직에 있어서 다비의 반교파적 접근을 채택했고 곧이어 소규모의 복음주의적 그리스도인 무리의 인도자로 부상했다. 1920년대 말에 그는 제임스 테일러(James Taylor)가 이끄는 형제회의 한 부류와 접촉을 가졌고 그들의 초청으로 1933년에 영국을 방문했다. 그러나 그들은 오스틴 스팍스가 관장하는 비형제회 모임인 HOCF(Honor Oak Christian Fellowship)과 허가받지 않은 교통을 하였다는 이유로 니와의 관계를 곧 단절했다.

복주에서의 소규모 시작으로부터 니의 운동은 중국 전역에 확산되었다. 1930년대에 그는 넓은 지역을 여행하며 기독교의 하나됨의 기본적인 표현으로서 (분열적인 교파주의에 맞서) 각 도시마다 오직 한 지방교회(회중)만 있어야 한다는 그의 신념에 근거한 회중들을 만났다. 1922년부터 1952년(중국혁명이 기독교의 확산을 차단했던 때인) 사이에 200개 이상의 지방교회들이 그의 사역을 통해 일어났다. 니는 또한 50권 이상의 책을 썼는데 대부분 그리스도인의 생활과 교회생활에 관한 것들이다. 교회에 관한 그의 성숙된 견해는 그의 가장 유명한 책인 ‘정상적인 그리스도인의 교회생활'(사역의 재고)에서 찾아 볼 수 있다. 그는 또한 ‘영에 속한 사람’을 썼는데 그 책에서 그는 몸 혼 영으로 구성된 사람의 세 부분의 본성에 대한 그의 이해를 발전시켰다.

1949년 에 권력을 장악한 중화인민공화국은 니를 (또한 그와 제휴함으로 관련이 있는 교회들을) 미국과 중화민국 정부를 위해 간첩행위를 했다고 고소했다. 그는 처음에는 상해에서 축출되었고 그후 1952년에 투옥되었다. 그는 1972년 감옥에서 죽었다.

1930 년대에 니는, 체후(Chefoo)에 있는 교회를 세우고 그 교회의 장로가 된 전 개신교 목회자(former Protestant minister)인 위트니스 리를 동역자로 얻었다. 그는 1932년에 니의 사역에 동참했고 몇년 내에 니의 가장 소중한 동역자가 되었다. 폐결핵과 싸우던 3년간의 부재 후에 위트니스 리는 중국혁명 직전인 1948년에 전시간 사역자로서 니와 재결합 했다. 니는 위트니스 리를 타이완으로 보냈는데 그곳의 교회들은 번성하여 태평양 연안으로 확산되었다.

미국으로 이주한 성도들은 그 운동을 서부 해안으로 가져왔다. 위트니스 리는 1962년에 미국으로 이주해서 리빙스트림 미니스트리(LSM)를 설립했다. 그는 지방교회들 가운데 인도적 지위에 있는 전시간 사역자로 인정받아온 이래, 지방교회의 확산을 위해 전반적인 방향을 제시해 왔다. 그는 또한 워치만 니의 저술에서는 발견되지 않는 몇가지 신학적 강조점들을 소개함으로 그 운동 안에서 혁신을 위한 근원이 되었는데 예를들면, “기도로 말씀먹기” “주의 이름을 부름”과 같은 몇가지 실행들은 논쟁의 주제가 되었다.

WRITTEN BY
rarryk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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