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교회] 포이멘의 말씀과 각주




마 1장 25절
아들을 낳기까지 동침하지 않았으며, 아들을 낳자 이름을 예수라 불렀다.


그리스도의 탄생은 하나님의 주권으로 예비되었고 성취되었다(마1:18,눅1:26-27). 하나님은 그분의 주권으로 요셉과 마리아 두 사람의 조상들을 그들의 선조 스룹바벨(마1:12, 스5:1-2)의 인도 직분 아래 바빌론에 포로되었던 상태에서 벗어나 유대로 돌아오게 하셨다. 스룹바벨은 유다지파의 지도자이며 왕족의 후손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을 예루살렘으로 인도했고(슥2:2), 성전의 재건축을 인도했다(스3:8.5:2). 만일 요셉과 마리아의 조상들이 바벨론에 남아 있었다면 어떻게 예수님이 베들레헴에서 태어날 수 있었겠는가? 또한 하나님은 그분의 주권으로 요셉과 마리아를 같은 동네 나사렛(눅1:26, 2:4)에 두셨다. 만일 그들이 멀리 떨어져 살았다면 그들은 결혼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더욱이 하나님은 그분의 주권으로 다윗의 보좌를 이어받는 합법적인 상속자가 되도록 요셉과 마리아를 결혼시키셨다. 결혼은 비밀이다. 두 사람을 한데 합치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며, 특히 처녀인 마리아에게서 낳는 예수님의 출생은 더욱 그렇다. 


참고성경 : 한국복음서원 신약성경 회복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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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교회] 포이멘의 말씀과 각주




마 1장 23절
보아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고,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부를 것이다(임마누엘은 ‘우리와 함께 계시는 하나님’이라는 뜻이다. 


우리는 또 다른 이름 임마누엘을 갖는다. 예수는 하나님께서 주신 이름이었고, ‘우리와 함께 계시는 하나님’을 의미하는 임마누엘은 사람에 의해 불리는 이름이었다. 구원자 예수님은 우리와 함께 계시는 하나님이시다. 그분이 없이 우리는 하나님을 만날 수 없는데, 이는 그분이 바로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 그분이 없이 우리는 하나님을 볼 수 없는데, 이는 그분이 우리 가운데 거하시기 위하여 성육신 되신 하나님 자신이기 때문이다(요1:14). 그분은 하나님이실 뿐 아니라, 우리와 함께 계시는 하나님이시다. ‘우리’는 구원받은 사람들을 가리킨다. 마태 18장 20절에서 예수님은 두세 사람이 그분의 이름으로 모일 때마다 그들과 함께 하신다고 말씀하셨다. 마태 28장 20절에서 예수님은 “나는 이 시대가 종결될 때까지 항상 여러분과 함께 있습니다“고 말씀하셨다. 임마누엘이신 예수님은 오늘 우리와 함께 계신다. 우리가 예수님을 부를 때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신다는 느낌을 갖는다.


참고성경 : 한국복음서원 신약성경 회복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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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이멘의 말씀과 각주




마 1장 21절
아들을 낳을 것이니, 이름을 예수라 부르십시오. 왜냐하면 바로 그분께서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들에서 구원하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는 히브리어 이름 ‘여호수아’(민 13:16)에 해당하는 헬라어로서, ‘여호와 구원자’, 혹은 ‘여호와의 구원’을 의미한다. 따라서 예수님은 사람이실 뿐 아니라 여호와이시며, 또한 여호와이실 뿐 아니라 우리의 구원이 되시는 여호와이시다. 그분 자신이 구원이시다. 그분 자신이 구원이시기 때문에 그분은 구원자이시다. 그러므로 그분은 우리의 구주이시다. 그분은 우리의 여호수아, 곧 우리를 안식(히4:8, 마11:28-29)으로 인도하시는 분이시다. 안식이란 우리에게 좋은 땅이 되시는 그분 자신이다. 우리가 예수님을 부를 때 그것이 단지 사람의 이름을 부르는 것이라고 생각지 말라. 우리가 예수님을 부를 때 온 우주는 우리의 구원자이신 여호와를 부르고 있음을 알 것이다. 유대인은 여호와를 믿었지만 예수를 믿지 않았다. 그들은 여호와를 갖고 있었지만 구원이 없었다. 그러나 우리는 구원자를 갖고 있다. 누구든지 예수님의 이름을 부르면 구원을 얻는다(롬10:13). 


참고성경 : 한국복음서원 신약성경 회복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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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교회] 포이멘의 말씀과 각주




마 1장 18절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신 유래는 이러하다. 그분의 어머니 마리아가 요셉과 약혼 하고 나서, 함께 살기 전에, 성령으로 잉태된 것이 나타났는데


그리스도는 마리아에게서 태어나셨지만(마1:16), 성령으로 잉태되신 아기이셨다. 그리스도의 탄생은 직접 성령으로 잉태된 것이었다(마1:20). 이것은 아기 예수님을 낳기 전에 이미 성령에게서 나온 신성한 본질이 마리아의 태 안에 생겼다는 것을 가리킨다. 성령께서 처녀 안에 그렇게 잉태되신 것은 신성한 본성과 사람의 본성으로 이루어진 것이다. 신성한 본성과 사람의 본성이 연합을 이루어 하나님-사람이 산출되었다. 그분은 완전하신 하나님이시며 온전하신 사람으로서 신성한 본성과 사람의 본성을 분명히 소유하시지만, 제 3의 본성을 산출하지는 않으신다. 이것이 여호와 구원자이신 예수님의 가장 놀랍고도 가장 탁월한 인격이다. 그분의 근원은 성령이었고, 그분의 요소는 신성했다. 처녀 마리아를 통해 그분은 피와 살, 곧 사람의 본성을 입으시고, 육체의 모양(롬8:3), 곧 사람들과 같은 모양(빌2:7)을 가지셨다.


참고성경 : 한국복음서원 신약성경 회복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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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교회] 포이멘의 말씀과 각주




마 1장 17절
그러므로 모든 세대 수가 아브라함부터 다윗까지 십사 대이고, 다윗부터 바빌론에 끌려갈 때까지 십사 대이며, 바빌론에 끌려간 후부터 그리스도까지 십사 대이다.


이 계보는 세 시대로 나뉜다. (1) 왕국 수립 이전 시대(조상들의 부분) (2) 왕국 시대(왕들의 부분) (3) 왕국 몰락 이후 시대(일반인들의 부분)이다. 역사에 따르면, 사실상 45대가 있었는데, 저주받은 3대와 합당치 못한 1대가 제외되고, 다윗을 2대(1대는 왕국 수립 이전 시대, 1대는 왕국 시대)로 함으로 모두 42대가 되었다. 다윗은 조상들 세대의 끝이며, 왕들 세대의 시작이다. 14대에 3을 곱한 것은 삼일 하나님께서 자신을 완전하게 피조물과 연합시키신다는 것을 가리킨다. 아버지 하나님은 조상들의 부분과 일치하고, 아들 하나님은 왕들의 부분과 일치하시며, 영 하나님은 일반인들의 부분과 일치하신다. 이것 또한 삼일 하나님과 그분의 피조물인 사람의 연합을 가리킨다. 40은 시련과 유혹과 고난의 수이고, 42는 시련 후의 안식과 만족을 상징한다. 이스라엘 자손들은 안식이 있는 좋은 땅에 들어가기 전에 42지점을 거쳤다. 천년왕국의 안식도 대환난 후에(42개월) 올 것이다(계13:5). 시련과 유혹과 고난의 모든 세대 후에, 그리스도는 42번째 세대로 오시어 우리의 안식과 만족이 되셨다. 그리스도는 모든 세대의 목표이시고, 완결이시고, 결론이시다. 그분은 역대의 예언들을 이루시고, 문제들을 해결하시며, 필요를 채우신다. 그리스도께서 오실 때 빛과 생명과 구원과 만족과 치유와 자유와 안식과 위로와 평안과 기쁨이 모두 함께 온다. 할렐루야 그리스도께서 오셨다!


참고성경 : 한국복음서원 신약성경 회복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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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교회] 포이멘의 말씀과 각주




마 1장 16절
야곱이 마리아의 남편 요셉을 낳았고, 마리아에게서 그리스도라 불리시는 예수님께서 태어나셨다.


여기의 계보는 ‘야곱이 … 요셉을 낳았고’라고 말하지만, 누가복음 3장 23절은 ‘요셉은 헬리의 아들’이라고 말한다. 누가의 기록은 ‘율법에 따른’ 것이었는데, 그것은 요셉이 사실상 헬리의 아들이 아니라 율법에 따라 그의 아들로 여겨졌다는 것을 가리킨다. 요셉은 마리아의 아버지인 헬리의 사위였다. 율법에는 하나님께서 만드신 규정이 있는데, 그것은 만일 어떤 부모에게 상속자로서 딸만 있다면 그 유업이 딸들에게 가야 한다는 것이고, 그 딸들은 그 지파에 속한 자기들의 유업을 지키기 위하여 자기 지파의 남자와 결혼해야 한다는 것이다(민27:1-8, 36:1-12). 구약에 있는 그런 규정까지도 그리스도의 계보와 관계있으며, 이것은 모든 성경이 그리스도에 대한 기록임을 보여 준다. 예수님은 요셉이 아닌 마리아에게서 태어나셨는데, 이것은 그리스도께서 여자의 씨이실 것이며 처녀에게서 태어나실 것이라고 예언되었기 때문이다(창3:15, 사7:14). 마리아는 처녀였고 다윗의 후손이었으므로(눅1:27,31-32) 그리스도께서 태어나시기에 적합한 사람이었다. 아브라함과 다윗과 마리아는 그리스도를 이끌어 온 중요한 세 인물이었다. 아브라함은 믿음으로 사는 삶을, 다윗은 십자가의 처리 아래 사는 삶을, 마리아는 주님께 절대적으로 복종하는 삶을 대표한다. 그리스도께서 인성 안으로 태어나신 것은 바로 이러한 세 종류의 삶을 통해서였다. 


참고성경 : 한국복음서원 신약성경 회복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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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교회] 포이멘의 말씀과 각주




마 1장 2절
아브라함이 이삭을 낳고, 이삭이 야곱을 낳고, 야곱이 유다와 그의 형제들을 낳고


아브라함은 여덟 명의 아들을 낳았다(창16:15,21:2-3,25:2). 그 가운데서 오직 이삭만 약속된 씨로 여겨졌다(롬9:7-8). 이삭은 쌍둥이 아들을 낳았는데(에서,야곱), 야곱만 하나님께 선택되었다(롬9:10-13). 장자권은 정해진 몫의 두 배의 땅과, 제사장 직분과, 왕의 직분으로 구성된다. 르우벤은 야곱의 장자로서 장자권을 상속받을 수 있었지만, 아버지의 침상을 더럽혔으므로 장자권을 상실했다(창49:3-4, 대상5:1-2). 정해진 몫의 두 배의 땅은 요셉의 두 아들인 므낫세와 에브라임을 통해 요셉에게 돌아갔고(수 16-17장), 제사장 직분은 레위에게 돌아갔으며(신 33:8-10), 왕의 직분은 유다에게 주어졌다(창 49:10, 대상 5:2). 따라서 하나님의 왕국의 왕이신 그리스도는 유다의 후손(히7:14)으로서 왕국을 상속받으신다.


참고성경 : 한국복음서원 신약성경 회복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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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 1장 1절
예수 그리스도의 계보이다. 그분은 다윗의 자손이시요, 아브라함의 자손이시다.


신약 성경에 나오는 첫 번째 이름과 마지막 이름(계22:21)이 예수이다.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신약의 주제와 내용이시라는 것을 증명한다. 구약은 오실 분에 대한 묘사를 예표들과 예언들로 제시한다. 이제 신약에서는 이 놀라우신 분께서 오셨다. 신약의 첫 페이지는 우리에게 이 놀라우신 분을 천거하면서 그분의 계보를 제시한다. 이 계보는 구약 성경의 요약으로 생각할 수 있으며, 구약 전체가 그리스도의 상세한 계보이다. 신약 성경은 그리스도의 네 방면을 묘사하기 위하여 네 권의 전기(傳記)를 제시한다. 마태복음은 그분께서 하나님의 그리스도로서 천국을 땅에 가져오시는 분이심을 증언한다. 마가복음은 그분께서 하나님을 위해 신실하게 수고하시는 하나님의 노예라는 것을 말해 준다. 종에게는 상세한 기록이 필요 없기 때문에 간단하다. 누가복음은 이 땅에서 유일하게 합당하고 정상적인 사람으로 사신 그분에 대한 온전한 그림을 제시한다. 요한복음은 그분을 하나님의 아들, 곧 하나님 자신으로서 하나님의 백성의 생명이 되신 분으로 계시한다. 사복음서 중에 마태복음과 누가복음에는 족보가 있고, 마가복음과 요한복음에는 없다. 마가는 노예이신 예수님에 관해 기록하면서 그분께서 나신 유래를 말할 필요가 없었다. 요한도 예수님께서 바로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밝히기 위하여 그분의 인간 계보를 제시할 필요가 없었다. 마태복음에 있는 그리스도의 계보는 부름 받은 족속의 조상인 아브라함으로 시작하지만 누가는 예수님께서 인류의 구주가 되실 자격이 있는 합당한 사람이시라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인류의 첫 세대인 아담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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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 21장 25절
예수님께서 행하신 일들은 이 밖에도 많이 있다. 만일 그것들을 낱낱이 기록한다면, 나는 이 세상이라도 그 기록된 책들을 담아 두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25절은 요한복음이 생명과 건축을 위하여 선별된 사례들을 기록한 책이라는 것을 증명한다. 마태복음 28장은 천국의 영적 왕이신 주님께서 부활 안에서 여전히 땅에 계시며, 그분의 보이지 않는 임재 가운데 천국 백성과 함께 계신다는 사실을 밝히고 증언한다. 그러므로 마태는 주님께서 하늘들로 승천하신 것을 언급하지 않는다. 요한복음은 삼일 하나님이신 주님께서 육체가 되시어(요 1:14) 하나님의 어린양이 되셨고(요 1:29), 사람을 위한 구속의 죽음을 성취하신 후에 부활 안에서 변형되시어 생명 주시는 영이 되셨으며(고전 15:45), 믿는 이들에게 들어가시어 영원토록 그들의 생명이 되신다는 것을 증언한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체현이신 그리스도가 되셨고, 사람들을 구속하시고 사람들 안에 들어가시어 그들의 생명이 되셨는데, 이것은 믿는 이들의 몸이 구속받아 변형될 때까지 생명이 자라기 위한 것이다. 궁극적으로 삼일 하나님과 구속받은 백성과의 영원한 상호거처로서 새 예루살렘이 되기 위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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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 21장 22절
예수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올 때까지 그를 남아 있게 하고자 한들, 그것이 그대와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그대는 나를 따라 오십시오.”


베드로의 순교를 언급하신 후에 주님은 베드로에게 “나를 따르라”고 말씀하셨다. 21장은 우리가 구원받고 위임을 받은 후에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주님을 사랑해야 하며, 어떤 희생을 치르더라도 끝까지 주님을 따라야 하는 그림을 보여준다. 주님을 따르는 실재는 그분의 양들을 먹이며 치는 것을 말한다. 주님은 제자들과 함께 거기 계셨다. 그렇다면 그분은 어떻게 ‘내가 올 때까지’라고 말씀하셨는가?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은 그분의 보이지 않는 임재와 관계가 있다. 보이는 임재의 방면에서는, 그분께서 떠나셨다가 후에 돌아오셨다. 그러나 보이지 않는 임재의 방면에서는, 그분께서 언제나 그들과 함께 계셨다. 한편으로는 주님께서 그들과 함께 계셨고, 다른 한편으로는 그들과 떨어져 계셨다. 그러므로 한편으로 그들은 주님을 따를 수 있었고, 다른 한편으로는 주님께서 돌아오시는 것을 기다려야 했다. 부활 후에 주님은 제자들이 그분의 보이지 않는 임재를 깨닫고 익히고, 이 임재에 따라 살도록 그들을 훈련시키시기 위해 40일 동안 그들과 함께 머무셨다(행 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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